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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安心)하기.

나 아닌 내 2022. 8. 2. 01:56

불안하다,

안심하라,

안심이 안 된다는 등등의 말을 더러 내고 듣곤 한다.

 

거북하고 싫은 불안에서 벗어 나고 싶고,

그런 불안이 없이 안심하고 싶은데 "안심 할" 수도 없고, "안심 되"지도 않아서 괴롭다는....

왜 그럴까?

 

불안이 싫고, 안심이 좋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안심이, 불안이 (그 말의 뜻이)무엇이냐?"고 물으면 ,

그 뜻을 모르는 줄 모르면서 아는 줄 아는 믿음에 빠져 있다.

 

"안심이 안심이고, 불안이 불안이지.."라고 -질문과 대답이 같은- 동어반복식 대답을 하는 사람이,

그런 대답이 대답이 아니라고 알까?

그런 대답이 뜻이 없는 헛소리라고 알까?

그래서 그 자신이 그 말의 뜻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까?

 

요약하자면 불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불안에서 벗어나려 하고,

안심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안심하려고 한다니,

과연 그가 하는 일이 불안을 예방 또는 해소하는, 안십을 실현하는 일에 단 1%라도 해당될까?

 

각설하고, 불안과 안심 모두가 사람의 두뇌 속에 서로 상대적인 언어(意), 즉 마음일 뿐 이다.

두뇌 밖(외부)에는, 사람이 만든 불안, 안심이라는 소리, 글자 말고는 그런 말에 해당되는 그 무엇이

추호도 없다.

 

"안심(安心)"은 두뇌 속 어떤 기억이나 상상인 정보(識)에 "안전하다", "걱정할 일 없다", "확실한 대비가 되어 있다" 

등등의 말(安意)이 연결되어 있는 의식이고,

"불안(不安)"은 두뇌 속 어떤 기억이나 상상인 정보(識)에 "생길까 겁난다", "생기면 위험하다", "걱정된다", "불안하다"

등등의 말(不安意)이 연결되어 있는 의식이다.

 

"불안하다", "불안한다"는 말은 위와 같은 불안의식을 만든다는 뜻 이고,

"안심하다", "안심한다"는 말은 위와 같은 안심의식을 만든다는 뜻 이고,

"불안(걱정)된다", "안심된다"는 말은 자기 두뇌 속에 그런 의식이 형성된다, 되어 있다는 뜻 이다.

 

여기서 "불안", "안심"의식을 만드는(하는) 자가, 사람의 두뇌 속에 두 가지가 있음을 알게 되리라.

즉, [내] 스스로 [불안하기]를 않았는데 "불안되어" 있는 경우가 거의 전부이고,

[내] 스스로 [안심하기}를 하지 못 하면서 "불안에 빠져 있는" 착각에서 탈출하려 애만 태우고 있다는 것을....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초등학교 시절에 어떤 중학생에게 소위 혼난 경험이 공포심으로 기억되어 있다.

수십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가끔씩 떠 오를때마다 현실인 것처럼 불안,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 불안에서 벗어 나서 안심하고 살고픈데 어찌 하면 좋을까?

 

첫째, 그 엣날의 기억을, "지금은 발생 가능성은 커녕 추호의 흔적도 없는 그냥 사라진 과거"라고 확인한다.

둘째, 설사 그 당시의 그 중학생을 "지금 만나도 전혀 겁낼 이유가 없는 현실여건(법, 체력등)"을 정확히 확인한다.

종합하자면, 위의 첫째로 불안할 일이 발생할 근거가 추호도 없음을 알고,(불안해소)

위의 둘째로 자기 자신이 그런 일이 발생해도 충분히 대처하고 방어, 반격할 수 있음을 알아차린다. (안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