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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일까?"를 숙제로 삼은 적 있는지...?

나 아닌 내 2022. 12. 12. 09:45

내가 무엇일까?"를 남에게 물을 때는

"네가 무엇일까?"가 된다.

그 물음에 대답을 하게 된다면 다음의 둘중 어느 하나이다.

("무엇이냐"는 물음과 "무엇일까" 하는 물음의 미세한 차이를 찾아 보시기를..)

 

1. "내, 이러 저러한 사람이다"(곧 바로 잘 안다는)

2. "내? 도저히 알 길(방법)이 없다"(모른다 보다 더 근본에 가까운 모르겠다는)

그대는 어느 쪽 인지...?

 

위의 1에 해당되는 사람에겐 그런 문제가 숙제로 남지 않는다.

2에 해당되는 사람중에서도, 탐구욕이 약한 사람은 숙제로 삼지 않는다.

탐구욕이 강한 사람에게는 숙제가 안 될 수가 없다.

 

따라서 그 질문을 받은 사람이 우매한 사람인지(위의 1), 탐구욕이 약한지, 강한지를

아는데는 그런 질문만 하고도 금방 알 수가 있다.

 

가. "내, 이런 저런 사람이지" (소위 生覺없이 두뇌에서 나오는대로의 반응에 그치니 우매하다)  

나. "내? 글쎄...그런거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쟎아.."(지장 유무와 정도를 알려는 욕망도 없다)

다. "내? 과연 뭘까? 알아봐야겠다" (탐구욕이 강하다고 본다)

 

위의 가, 나, 다 중에서 "내"라고 자칭하는 그 자의 정체를 알 기회는 누구에게 더 가까울까?

소위 불문가지(不問可知) 아니리오.

 

그렇다면 "다"에 해당되는 사람은 "내"라고 자칭하는 칭자 그 자신을 알 수가 있을까?

두뇌 속 의식으로 형성된 "이러 저러한 내 자신"은 칭자가 알 수 있는 대상이지,

칭자 자신일 수가 없다.

 

소위 내(칭자)가 아는 내 자신(피칭자인 대상)일 뿐 이다.

내가 아무리 "이 것이 내"니, "저 것이 내"니 하고 지칭(指稱)하면서 "내 자신"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도. 그건 이름만 자칭인 타칭(他稱)일 뿐 자칭(自稱)이 아니다.

.

타칭하면서 자칭이라 속는 것 말고, 내가 내 자신을 직접 마주 대(對)할 일은

절대로 성립 불능이다. 

내가 둘이 아니니까.(둘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하는 자칭자는 하나뿐 이니까)

 

이상 여기까지만 알아도 지혜가 엄청난 수준으로 상승했다 할 수가 있다.

왜냐, 이런 글 뿐만 아니라 직접 자세한 설명까지 해 주어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니까.

 

그렇다면, "내가 내 자신을 알길이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안 것에 만족하고 그쳐야 할까?

탐구력(소위 호기심)이 강한 그대라면 결코 동의하지 않으리라. 

직접 알 길이 없으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하고...

 

여기에 대한 유일한 답이 공제론(?)이다.

존재론이 아닌 인지론에 있어서는 "아는 자와 알려지는 것은 하나가 아니니 같지도 않다"는

제1 논리를 바탕으로, "알려지는 모든 것은 아는 자가 아니다"라는 제2 논리, 그리고

거기서 "고로, 내게 알려질 수 있는 것 일체를 공제(控除)하고 남는 유일한 것이 내 자신"

이라는  소위 3단 논법과 유사한 논리 전개가 가능해 진다는.

 

이 정도에 이르면 그 어떤 "고민스런 나"도, "피해당한 나"도, "불평불만인 나"도, "죽고싶은 나"도,

"(누군가를) 미워서 죽이고 싶은 나"도, "잊고싶은 나"도, "잊을 수 없는 나"도 그 모두가 [내]게

알려진다는 근거 하나만으로 [내]가 아니라는 필요 충분한 근거가 된다.

 

그런 다음에 "무엇이, 왜(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하라고) 내를 만들었을까?" 하는 문제도 만들어서

탐구할 수가 있고, 그 결과로 자기와 주변 나아 가 인류의 삶에 도움될 논리적 탐구를 계속할 수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