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對)하여, 관(關)하여 안다?
대(對)나, 관(關) 모두가 소위 한문(漢文)이다.
우리 말로는 "대하다", "관련하다" 등으로나 번역할 수 있을 뿐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그래서 이하에서는 필자 나름의 뜻(내 두뇌속 意識)을 제시하고자 한다.
대(對) : "어떤 주체가 어떤 행위를 하는 대상을 마주 해 있음"을 뜻 한다고.
대(對)가 성립되려면 1. 대(對)하는 주체, 2. 대(對)함의 대상(객체), 3. 대(對)하는 행위, 3 요소가 구비되어야 한다.
예컨대, 무언가를 대상(객체)으로 삼아서 보기(행위)를 하는 자(주체)가 있어야 대(對)가 성립된다.
주체가 없이는, (주체의)객체가 있을 수 없고, (주체의) 대(對)행위도 있을 수 없으므로 대(對) 성립불능이다.
주체가 있어도, (행위할) 객체가 없으면 대(對)가 있을 수 없다.
주체가 있고, 객체로 삼을 수 있는 대상(가능성)이 있어도 대(對 행위) 하지를 않으면 역시 대(對)는 성립하지 않는다.
관(關) : 어떤 주체가 무엇과 무엇을 관련(빗장으로 양쪽 문을 연결하듯이) 지음"을 뜻 한다고.
관(關)이 성립되려면 역시 1. 관(關)을 짓는 자(주체), 2. 관(關)의 대상이 되는 둘 이상(객체), 3. 객체들을 연결하는 관련짓기(關행위)의
3요소가 구비되어야 한다.
1. 관(關) 행위를 하는 주체, 2. 관 행위의 대상인 둘 이상의 객체들, 3. 주체가 하는 관(관련짓기) 행위라는 3요소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관(關)이 있을 수는 커녕 성립조차 될 수 없다.
이상 대(對)와 관(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있으면서 그 행위를 하는 주체가 무엇이냐 이다.
눈 앞에 있는 컴퓨터 화면을 직접 대하여 시각적 접촉(통상용어론 보기)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눈인가, 두뇌인가? 정신인가?생명인가?
무엇이(주체), 무엇(객체)을 대하여, 눈을 움직이는 일을 명령하는가?
무엇이(주체), 두뇌 속에 형성된 정보(객체)를 대하여 알고 다루기를 하는가?
무엇이(주체), 두뇌 속에 형성된 "나경원이 말한 문재인의 폭정"이라는 정보(識)에 대(對)하여 알고 다루기를 하는가?
이 사람의 무엇도, 실제로 살아있는 황교안, 나경원을 접촉한 일이 없는데도,
"나는 황교안에 대하여 잘 안다", "나는 나경원이란 인간에 관하여 너무나 잘 안다"는 소리가 태연히 나온다.
내(이 사람의 정신), 그런 소리를 듣고 "내가 (실존하는)그들에 대하여나 관해서 잘 안다"고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다.
제대로 깨달아서 이해하지 못 하면, 어쩌면 일생 동안 그런 식의 맹신에 빠져서 허우적대리라.
이 사람의 두뇌 속에 있는 "내가 직접 대하여 아는 것"은, 결코 두뇌 바깥에 실제로 있었던 것도, 있는 것도, 있을 것도 아니다.
그러니, 두뇌 바깥에 있는(있은, 있을) 무엇도 (대(對)하여 알 수가 없다.
단지, 그 무엇과 감각적으로 직접접촉하여 형성된 두뇌 속정보(識)에 대하여, 그 정보(識)에 두뇌에서 생성된 평판(意)에 대(對)하여
아는 것(知意識)을 실제로 있는 그 것에 관하여(關련지어서) 안다고 믿고 있을 뿐 이다.
거의 일생을 함께 산다는 "배우자에 대하여 관하여 아는 것"이라는 대답을 진지하게 검토, 확인해 보시라.
감각적으로 직접접촉하여 형성된 기억들이 얼마나 양적으로 부족함 없고, 질적으로 부정확함이 없는가를....
게다가, 자기 두뇌에서 멋대로 상상된 정보(想識),생성된 평판(意)등을 대(對)하여 알면서, 그걸 실제의 배우자 그대로에 관련지어서,
배우자 그대로를 안다고 맹신에 빠져있지 않는가?
"평생을 함께 살아도 도저히 모르겠다"는 말이야 말로 현명한 바보(?)라야 할 수 있지 않겠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