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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容恕)의 정체를...

나 아닌 내 2019. 11. 23. 22:02

중국식 단어 "용서(容恕)"를 "관용(그 극치가 그대로 담음)하여 풀어 버림" 이라 풀이하고자 한다.


용(容)은 담는다는 뜻 인데, 왜 담음을 용서의 일면(一面)이라고 할까?

이미 담고 있으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답시고 담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니 해괴해서 처치곤란이기 때문이다.


그 대상에 "나쁘다, 싫다, 밉다, 용서할 수 없다, 보복하고싶다"는 등등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부정적, 惡意적인 마음)이 붙어서,

좋아하는 마음(긍정적, 好意的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담아두기 싫다는 마음이다.


그 대상에 관한 정보(識)를 조용히 담으려면, 거기에 아무 평판(의미부여, 意) 없이 고침이 필요 충분조건이다.

"좋다하지도, 싫다하지도 말고, 그냥 있었던 그대로만 기억하자" 함으로써 용(容)을 하게 되니까,


그냥 용(容 = 관용이라 하건, 포용이라 하건)하면 이전의 평판(惡意)에 퉅어서 파생된 의사(복수하자는), 의견(복수해야 마땅하다는),

의향(복수하려는 방향으로 사고와 행동이 이루어 짐), 의욕(복수한 가상적 결과를 바람), 의지(복수하려고 다짐을 강화), 의기(분노의 에너지가 체내에 축적), 조울(짜증과 성남, 우울로 의기소침)등등이 그 뿌리(惡意)가 해소됨에 따라서 저절로 풀리게 됨이 서(恕) 이다.


용서의 핵심은, 두뇌 속에 기억되어 있는 그 대상 정보(識)에 부가되어 있는 부정적, 오의적인 평판들을 자기의 삶에 도움이 되는지,

해로움이 되는지를 재검토하여  "백해무익 하다"고 판단되면 그대로 확인, 선언하는 일 이다.

미움의 원인인 나쁘다, 고약하다 여기는 마음(惡意)를 없이하는게 용(容=包容, 寬容)이고, 그러면 따로 서(容恕) 할 일도 없이 용서가 된다.


이상의 용서는 자기 두뇌속에서 자기의 삶에 장애를 유발하는 증오의식을 해소하는 작업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를 만나서 용서한다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자기 두뇌 속에 미움이 해소됨으로 용서는 이미 완료되었으니, 따로 무엇을 하건 그건 용서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이상과 같이 용서의 정체를 이해한다면, 그걸 한다고 유익하기만 할뿐 잃을게 추호도 없는데 왜 주저하고 기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