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안드는 마음을 담고 있는 마음.
"나는 그 아무개가 도저히 마음에 안 든다"는 말(소리)을 듣는 수가 있으리라.
그런 소리를 들으면 "그런 일이 있는가 보다"하고 여겨지는....
그런데 여기서 "그런 일"이란 게 무슨 뜻 인가?
그런 일이 그런 일 이지...하거나,
무언지는 몰라도 그런 일이 있겠지 뭐...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사람들은
1. 어떤 사람이나 사물(實存)을 접하고 살면서,
2. 자기 두뇌 속에 그에 관한 정보(識)와 평판(意)인 의식(意識) 이 형성되어 있고,
3. 그 의식을 말(言)이나 글(文)로 표현하는 식으로 산다.
1(實存) 그 자체와, 2(타인의 두뇌 속 意識), 3 (타인의 두뇌에서 나온 말(언어, 문자)은
그 소재(所在)도 다르고, 그 양(量)도 다르고, 그 질(質)도 다르니 같다할 것이 전무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셋을 같다고 여기는 정도를 지나서, 혼동까지 한다.
여기선 "같다"와 "혼동"의 뜻을 다음과 같이 구별하고자 한다.
갑과 을을 비교해 보면서 서로 같다 하는 것이 "같다"이고,
갑을 보고 을 이라고 아는 것이 혼동이다.
어떤 사람에 관한 남의 말을 듣고서, "그 사람에 관한 남의 말"이라고 알면 같다도, 혼동도 없다.
그 말을 듣고는 "그 사람 자체가 말 그대로와 같다고 여겨지면" 같다이고,
그 말을 듣고, "그 사람 자체를 직접 만나서 아는 것 처럼 여겨지면" 혼동이다.
"그 아무개가 도저히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이라는 말을 듣고, "그 아무개가 그런 사람이구나" 여겨지면 혼동이다.
"그 사람에 관한, 저 사람 제 마음(의식)이 그렇다는 말 이지..., 그 사람도, 그리 말하는 저 사람의 속내도 내 모르지" 하면 정상이고,
"마음에 안 드는 마음을 담고 있는 마음" 이라는 이 글의 제목에는 서로 다른 "마음"이 세 가지로 등장한다.
첫째는, 들이고 안 들이고를 정하여 놓고 있는 마음으로 대체로 긍정적(好意的)인 마음방(?)이고,
둘째는, 위(첫째)와 아래(셋째)의 마음방에 들어 갈 수 있거나, 없는 개별적인 마음이다.
셋째는, 역시 들이고 안 들이고를 정하여 놓고 있는 마음으로 대체로 부정적(惡意的)인 마음방(?)이다.
위의 둘째는 개별적인 하나의 마음(意識)이고, 첫째와 셋째는 개별적인 마음을 일반적으로 대별(大別)하여 담는 그릇, 통, 방과 같다.
예컨대, 월 수입이 300만원이 넘어야 "좋다(好意), 마음에 든다" 하기로 정해 놓은 첫째 방 앞에, 당장은 무일푼인 사람 정보(둘째 마음)가 등장하면 "마음에안 든다" 하는데 그치지 않고, "뻔뻔스럽다, 누굴 뭘로 보고..얄밉다" 하는 평판(惡意)이 형성되면 셋째 방에 들(이)게 된다.
그런 경우를 정확히 말 하자면,
"긍정(好意)적인 마음(방)에 들지 않고, 부정(惡意)적인 마음(방)에 든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 두뇌 속에 "부정(惡意)적임 마음(방)"이 있는 줄을 몰라선지 그냥 "마음에 안 든다"고만 한다.
소위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은 다음 세 가지 경우에 혼용되고 있다.
"좋아하는 마음(방)에 안 든다",
"싫어하는 마음(방)이 든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마음(방)에 든다"
위의 셋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으면 "마음에 든다, 안 든다" 할 일이 없다.
그(둘째) 마음이, 첫째 방(好意的)에는 안 들(이)고, 셋째 방(惡意的)에는 들(이)게 되는 경우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차려야 할 몇 가지 교훈을 상상해 볼 수 있다.
1. 사람의 두뇌에는 왜(무슨 필요나 목적이 있어서) 어떤 대상정보(識)를 세 가지(긍정적, 부정적, 무의미적)로 구별하는 기능이 있을까?
2. 사람의 정신은, 두뇌의 그런 기능을 어떻게(자주적?, 수동적?) 다루어야 할까?
3. 무언가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나쁘다(싫다) 하는-또는 나쁘다 하지 않는 것과 좋다 하는 것을 구별할 실익이 무얼까?
1 (평판기능의 창조의도?) 은 자기의 삶에 그런 구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삶에 필요하고 유익한 것을 가까이 하여 실용하려면, 그렇게 함을 "좋다, 옳다, 마땅하다, 착하다, 이롭다, 의롭다"는 등등 긍정적(好意的) 평판(意)이 부가되어 있어야 하고,
자기의 삶에 불필요하고 무해, 무익한 것은 가까이 하거나 멀리하거나 할 필요도 실익도 없다고(즉, 무의미하다고) 평판되어 있어야 하고,
자기의 삶에 불필요하면서 유해한 것을 멀리하여 피해를 예방하려면, 그리 하지 않음이 "나쁘다, 마땅치 않다, 악하다, 해롭다, 불의하다"는 등등의 평판(意)이 부가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2 (내 자신의 평판작업) 는 자기의 삶을 전적인 책임으로 운전하고(運命), 그러기 위해서 완전히 자유로운 정신이 그 본분을 전적인 자유와 책임으로 수행하지 않고,
두뇌 속에 형성된 의식에 종속적, 피동적, 소극적, 맹목적, 무조건적으로 맹신, 맹종한다면 부작위에 의한 반역과 무엇이 다른가?
3 (중립적 평판의 가치)은. 무언가를 자기의 삶에 불필요하다고 좋아하지 않으면 그만인 경우에, 그것을 나쁘다 하여 멀리하려 함은 시간, 노력, 비용을 적절히 사용하지 못 하고 낭비하게 되는 경우와,
무언가를 자기의 삶에 불팔요한데도 나쁘지 않다고 좋아한다면, 그 또한 위와 마찬가지다.
예컨대, 길을 가다가 돌맹이를 밉다고 거더 차는 짓,
가수나 탈렌트를 좋다고 학업도 소홀히 하는 짓 등등이 그런 예 이다.
3 은 바로 그런 일을 하지 않거나 그치는데 실익이 있다.
이제, 자기의 두뇌(마음) 속 두 가지 마음방을 탐색해 보시라.
좋아하는 것(호의적인 방), 싫어하는 것(惡衣적인 방)이 얼마나 많이 오래 쌓여 와 있는지를.
그 것 때문에 정신력, 사고력, 체력, 비용을 얼마나 허비하고 있는지도...
되지도 않고, 할 수도 없고, 하지 않음이 당연한 일을 "좋다, 되기를, 하기를 추구하는 마음" 때문에 겪는
호의방(好意적 평판이 있는 마음방)에 애별이고(愛別離苦), 구부득고(求不得苦)가 얼마나 많은지....
오의방(惡意적 평판이 있는 마음방)에 원증회고(怨憎會苦)가 얼마나 많은지.....
심지어는 본 것, 들은 것, 접촉한 것 모두가 마음방에 짐 딱지(意)로 첩첩히 쌓여있는 사람도 있다더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