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게 하기.
"잊게 해 주오, 그 대를 모르게 잊게 해 주오"
가수 장계현이 부른 [잊게 해 주오] 노랫말의 일부이다.
"잊어라", "잊고 싶다", 모두가 더러 듣는 말 이다.
그런데 누구도
1. 스스로 "잊기"란 것을 하지도 못 하고,
2. 남에게 잊기를 해 주지도 못 한다.
3. 또 "잊혀지기"도, "잊혀지게"도 마찬가지다.
4. 잊지 않기, 잊혀지지 않기, 잊혀지지 않게도 마찬가지다.
잊음의 반대는 잊지 않기(不忘)라 하지만, 알음(知)을 지속하기가 아니다.
잊음도, 알음도 직접, 인위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고, 단지 잊혀지겠금, 잊혀지지 안겠금 두뇌 속 그 의식에 작업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작업의 방법과 요령을 모르고선 잊기이건, 잊지 않기이건, 잊혀지게이건, 잊혀지지 않게이건 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잊기"라 하건, "잊혀지기"라 하건, "잊혀지게"라 하건 할 수 있는 일(방법)을 찾지는 않고,
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 잊기, 잊혀지기, 잊혀지게를 그냥 바라기, 부탁하기만 하고 있으니....
차라리 바라지 않으면 실망도 좌절도, 원망도 일어나지 않을텐데도.....
알음(知)이 성립되려면
1. 아는 자(주체인 두뇌 속 정신 =知主)
2. 알려지는 대상(객체인 두뇌 속 의식 =被知客)
3. 아는 행위(주체가 대상에 對함 =知行爲)
이상 세 가지 요소중에서 그 어느 하나만 없어도 알음(知)이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
여기서 모름(無知, 不知)이 성립되는 요소가 저절로 유츄되리라.
1. 아는 자(그 사람의 정신, 내 자신)가 잠(수면)에 들어 있어서 아는 주체로 있지 않을 때. (그래서 수면제 복용, 대취하여 잠들기를 한다)
2. 두뇌 속 의식계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거나(기억상실), 특정의 그 의식이 떠 오르지 않을 때(그 것을 알 수가 없다)
3. 떠 올라 있는 의식이라도, "그 것을 아는" 행위를 하지 않을 때.(눈 앞의 다른 일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으면 모른다)
이상으로, 사람들이 "잊기 위해서" 하는 일들이 대체로 짐작되리라.
수면제, 과다한 음주로 아는 주체로 깨어있음(覺)을 없이 하거나,
머리통을 쥐어박거나 잊고싶다고 온갖 발버둥을 치거나,
마약, 오락, 운동, 독서삼매에 몰입하려 하는등을......
그런데 위의 그 어떤 방법으로도 잊기건, 잊혀지게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 수록 "잊기를 바라는(意慾이 붙은) 그 것(識)"을 더 자주 대(對)하게 된다.
왜 그럴까, 그런 짓이 바로 역설적으로 "잊기위하여"의 깃발이랄지, 호출이랄지가 되어서 그 의식을 불러 내가(떠올리기) 때문이다.
"이 것을", "이 것을 잊고싶어" 하면서 기억해 내야 하니까.
여기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잊기 위해서 시도하는 방법은 모두가 역효과만 유발하여 백해무익하다는 것이 규명, 이해되었으리라.
그렇다면 신기한 묘책은 없을까, 있고 말고다.
첫째, "잊기 위해서"라는 의욕(意慾)의 뿌리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왜 잊고싶은가를.
바로 의욕(意慾)대로 되지 않고(不可望), 할 수 없고(不可能), 하면 안 돼는(不可當) 일을,
되어야 좋다, 해야 좋다, 하고 싶다고 바라는 의욕(意慾)이다.
그 뿌리에는 "되지도 않는 되면", "할 수도 없는 하면", "하면 안돼는 하면"이라는 말로조차 해괴망측한 망상(妄想)이 있다.
그 망상(妄想)에 좋다(好)가 워낙 강하게 붙어서 당부(當否), 가부(可否), 이해(利害), 선악(善惡), 의 불의(義, 不義)를 따지지도 못 하는...
그렇게 집착하고 노심초사한다고,
안 되는 일이 되고, 못 하는 일을 하고, 안 돼는 일을 해도 됀다고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망상을 망상이라 확인, 선언하고 무시하라"는 경고로 내면의 주인에게서 고통(苦痛)이 생겨 나온다.
애별이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등이 모두 그런 것 이다.
자, 여기까지 이해되었으면 "쓸데없다", "백해무익이다", "무시해야 마땅하다" 하는 등의 평판(意)이 붙은 망상(妄想)이
떠 오르겠는가?
떠 오르지 않는데 알 수나 있는가?
설사 어쩌다 간혹 떠 오른들 "망상이 왜 떠 올라, 무시 !" 라며 외면하는데, 잊으려 애쓸 일이 어찌 생기고 남으리오.
결국, 결론은 아주 간단한 하나이다.
"그 것(두뇌 속 특정의 기억이나 상상인 識)에 그런 의미(意)를 붙이다니, 참 바보였구나.." 한마디로 필요, 충분하다.
그 이외는 추호도 애쓰지 않아도 알려지지 않는데, 잊으려 애 쓸 일이 어찌 생기리오.
잊기싫거던 그 기억(識)에, 좋다거나 싫다는 마음(意)에다 아주, 매우, 중처대 등등의 강조어를 붙여 놓으면 저절로 자꾸 떠오르게 되니 잊혀지지 않고,
잊고싶거던, 그 기억(識)에 붙어 있는 마음(상대적인 평판인 意)을 "잊는데 방해된다"고 확인하고 선언하는 것 이면 필요 충분하다.
그런데 사라들의 잊기, 잊지않기에 관련된 대부분의 문제는 그 원인과 조건이 그리 안 되겠금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용도에 "중차대하다"고 의미를 부여해 놓지도 않고 그저 잊지만 말자고 바라니, 떠오를 꺼리(구실, 이유)가 없는데 떠오르리오.
"큰일"이라는 의미를 붙여 놓고 있는 기억에서 그 의미어(마음)을 필요치 않다고, 장애만 된다고 무효화 하지 않고 잊기만 바라니 떠오르지 않으리오.
이제, 잊고싶거나 잊기 싫거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단과 방법을 알았으니, 이러고도 잊지 못해서나 잊어서 문제가 된다는 일은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