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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몰라서 불행하지 않다.

나 아닌 내 2019. 12. 6. 18:19

행복을 몰라서 불행(행복 아님)을 모른다.

불행을 몰라서 행복(불행 아님)도 모른다.


행복을 알아야 불행을 알 수 있고, 불행을 알아야 행복을 알 수 있다.

그 둘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상대적인 말(意, 평판)이기 때문이다.


행복(幸福)과 행복 아님(不幸福 , 不幸)의 정체를 아는가?

이 질문은 두 가지 뜻을 담아서 할 수가 있고, 따라서 해석도 두 가지로 할 수가 있다.


첫째, "행복", "불행"이라는 각각의 형상이 무엇이냐고 물음이다.

그런 모양의 글자, 읽으면 "행복", "불행"이라는 음성이 나오는 글자라고 대답하면 정답이다.


둘째, "행복", "불행"이라는 두 단어의 뜻(두뇌 속의 意識)이 무엇이냐고 물음이다.

두뇌 속에, "행복(名), 불행(名)이라는 이름과 연결된 식(識 = 기억, 상상)과 그에 부가되어 있는 상대적인 평판(意)"으로 의식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 추상적인 뜻 이다.


개별적, 구체적으로 "이러 저러한 이미지와 서술이 사실적인 행복(識)이고, 좋다여하, 옳다 여하, 도움된다 여하등 비교적 상대적인 평판의

말이 의미적인 행복(意)이다.

대체로 행복식(識)에는 긍정적인 평판(意)이 연결되어 있다.


"불행"이라는 뜻 에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소극적으로 행복(幸)이 아니(不)면 불행(不幸)"이라는 식(式) 이고,

또 하나는 적극적으로, "불행"이라는 이름(名)과 연결된 식(識=기억, 상상)과 그에 부가되어 있는 상대적인 평판(意)으로 의식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 추상적인 뜻 이고. 그 이미지(識)의 내용과 평판(意)이 개별적,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것도 있다.


이 정도까지 이해되지 않고는 행복을, 불행을 아무리 잘 안다고 알아도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행복이 행복이고, 행복아닌 것이 불행이고, 불행 아닌 것이 행복이지" 하는 식으로 아는 것에 불과하므로.


결론적으로 자기 두뇌 속에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이름조차 없다면,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말 자체가 나오지도 않고,

그런 말을 들어도 소리 이외로는  모른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영어를 들은 것 처럼)


자기 두뇌 속에 행복, 불행이라는 이름만 있고, 그 것으로 지칭되는 대상이 없다면 공허한 이름이고, 그걸 안다고 알 뿐이다.

자기 두뇌 속에 행복, 불행이라는 이름과 그에 연결된 정보(識 ;기억, 상상)와 평판(意)이 연결되어 있으면, 그 것(意識)을 행복, 불행이라고

알게 된다.


자,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말 조차 두뇌 속에 없는 사람, 그 자신으로서  행복할까, 불행할까?

그야 자연스럽게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지......


남으로서 보기에, 그런(행복도, 불행도 모르는) 사람이 행복하다 여겨지는가, 불행하다 여겨지는가?

행복을 모르니 불행하다고? 불행을 모르니 행복하다고?

다, 보는 사람의 보기 나름일 뿐 이다.


끝으로 불행을 전혀 경험하지 않고, 행복만 경험하고 싶다면 그 비결(?)은 너무나 단순하다.

그 전헤, 여기서 사용하는 경험(經驗)이란 말의 뜻 부터 밝혀 두고자 한다.

경(經 =지난다, 거친다) + 험(驗 = 실제로 접촉한다) = 경험(經驗 == 행복이라는 의식을 거쳐서 현실을 안다) 이라고.


실제로 정신이 깨어서 아는 일을 하는 언제나, 그 주변의 지금 그대로를 "이렇게 있어서 좋다, 행복하다" 하기로 결심(決心)해 놓는 것이

필요, 충분 조건이다.

그리 해 두면 "그 이외의 시간이나 공간에는 추호의 행복도 있다"고 하는 일이 없으니, "지금 이대로가 그 보다 불행하다" 할 일이 어찌 생기리오.


내가 스스로 만드는 상황이건, 주변의 누구나 무엇이 조성하는 상황이건, 그 것을 그대로 수용하건, 그 것을 변화케 하려고 나서건 {지금, 이 모든 일이 행복하다]고 판단하는 데 언제, 어디서, 무엇때문에, 어떻게, 행복하지 않다거나 불행하다는 마음이 생길 여지가 생기랴.


소위 실패란 걸 해도 "실수도 학습이고 교훈이다 이 정도로 다행"이라 판단하고,

누구로 부타 소위 피해를 당해도 "당할만 해서 당한 일, 이를 교훈삼아 활용하면 다행"이라 판단하여

남 주는 것 아닌데, 왜 사람들은 그게 마치 자기에게 손해나 된다고만 알까.........?


마치 이루어지지도 않는 행복을 추구라도 해야 당연한 것 처럼,

그런 해괴한 당연( 當然 = 人之常情?) 때문에 자기(사람)도, 자신(내 자신)도, 마음(意慾)도, 몸도 얼마나 수난을 겪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