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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 속의 "사람"들.

나 아닌 내 2019. 12. 9. 13:56

여기서 잠시 "사람"이라는 말의 뜻을 세 가지로 구별해 놓고 살피려고 한다.


첫째, 사람을 "아는" 사람이다.

둘째, 사람이라고 "알려지는" 사람이다.

셋째, 위의 둘을 품고 있는 [전체]로서의 사람이다.


첫째는 바로 내 자신이다.

"내가 이 사람을 안다"고 하는.

그런데 내가 안다는 "이 사람"이란 말의 뜻이 과연 무엇일까?


첫째인 내가, 첫째인 내 자신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실증적으로 명백화지만, 그렇다고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니 신기? 해괴?

셋째인 전체를 알 수가 없다는 것도 알지만, 어느 부분(정도)만을 알 수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둘째는 바로 두뇌 속 의식계에 형성되어 있다가 떠 올라있는 나(我意識)만 알 수가 있다.(이 사람 전체의 극히 일부만 안다)


첫째인 내가 무엇이냐 하는 문답과 첫째인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답은 손의 앞뒤 양면과 같다. 

사람이 안다는 것이 의식(意識)이고, 의식이 두뇌 속에 있다는 것만 알면 의문이(대답으로) 저절로 풀리기 때문이다. 

의식을 아는 내가, 두뇌 속에 의식과 일정한 거리를 둔 가까이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 해답을 내기가 여렵지 않으니까. 


자, 그렇다면 내가(위의 첫째인 정신?) 아는 것이 이 사람 전체(셋째)의 극히 일부에 불가하다고 확인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아는 "나"는

더 적은 일부일텐데 과연 그게 몇이나 될까?

주먹만한 두뇌 속에 저장되어 있는 의식중에서, 지금 내 앞에 "나"라고 알려지는 것은 하나뿐 이지만, 그런 "나"가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도

누구나 알기가 쉽다.


그래서 사람의 두뇌 속을 작은 우주, 그 속의 사람과 관련있는 의식을 "세상",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중생(衆生)", 그 중생중의 아무리(我衆)도

중생이다.

내로선 나(我) 무린인 중생도, 남 무리인 중생도, 그들이 속해 있는 세상도  다루어야 할 (두뇌 속)대상이다.  


이렇게 안다면 어떤 실익이 있는가?

한정된 이 사람의 능력으로 어찌 할 수가 없는 [대우주 속의 사람]이 아니라, 내게 완전한 자유 처분권과 책임이 있는 "세상속의 중생"들 중에

내가 쩔절매야 할게 하나도 없구나...하는 깨두침이 가능하면 그 실익은 쉽게 짐작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