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意), 그 맛(意味)이 없다면....
마음때문에 웃고 운다.
마음, 그 -달거나, 쓰디 쓴- 맛 때문에 살 맛이 난다, 안 난다.
마음때문에 살고 죽는다고도 한다.
이런 등등의 소리인지, 말(뜻이 있다면)인지를 더러 듣는다.
마치 마음을, 그 "마음"이 무얼 지칭하는 말인지 다 안다는 듯이 그런 소리를 내고 들인다.
"마음이 마음이지...."라고 밖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과연 몇%나 될까?
여기서 사용하는 "마음"은 필자 개인의 뜻 이니 누구도 왈가 왈부할 실익이 없다.
이 글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그런 뜻으로 이해해도 그만이고, 일소(一笑)에 부치고 무시해도 그만이니까.
자기 두뇌 속에 있는 "상대적인 말" 일체를 마음(意)이라고 한다.
1. 무엇과 무엇을 -크기, 수량, 높이, 널이등 사실적으로- 비교하는 말(比較語) = 크다(작다), 많다(적다), 높다(낮다), 두텁다(얇다)...
2. 무엇을 기준으로 무엇을 평가하는 말(評價語) = 이다(아니다), 있다(없다), 좋다(나쁘다), 마땅하다(마땅챦다), 옳다(그르다)...
3. 무엇을 기준으로 무엇을 결정하는 말(決定語) = 하자(말자)
4. 무엇을 기준으로 무엇을 판단하는 말(判斷語) = 그래(그렇지 않아), 맞다(틀리다)....
그 이외에도 모든 상대적인 짝이 있는, 선택이 가능한 말은 마음이 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마음이 사람에게 어떤 효용이 있을까?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효용과 인생에 지장 내지는 해를 끼치는 부정적인 효용으로 구별해 볼 수 있겠다.
만약에 그 어떤 마음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를 연상해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예컨대, [돈 1억원]이라는 사실을 보면서, 두뇌 속의 그 정보(識)에 어떤 마음(意)도 없다면,
첫째, 돈(가치)이라고 알지도 못 한다.
둘째, 돈 임을 알아도 "크고 많고, 소중하다"는 마음(意)이 없으면 그렇게 알지 못 하니 그렇게 다루지 못 한다.
(반대로 "작고, 적고, 하챦은 액수"라는 마음(意)이 있으면 그렇게 알고 있으니 그리 다룰 수 밖에 없다.
셋째, "사람을 타락시키는 더러운 것"이라는 마음(意)이 있으면 회피, 거부, 배척할 수 밖에 없고...
긍정적인 마음이니, 부정적인 마음이니 하는 구별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맛(味)을 기준으로 하면 좋다(好), 옳다(可), 마땅하다(當)는 맛이 대체로 단맛이고, 그 반대가 쓴맛이다.
삶에 도움이 되느냐 여하를 기준으로 하면 이롭다(利)가 단맛, 그 반대가 쓴맛이다.
남의 평판을 기준으로 하면 잘 했다(讚), 훌륭하다(高)가 단맛, 그 반대가 쓴맛이다.
양심이니 도덕이니 대의니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착하다(善), 의롭다(義), 양심적, 도덕적이 단맛, 그 반대가 쓴맛이다.
위의 기준을 단순히 병렬적으로 두느냐, 위계를 정하여 배열하느냐에 따라서 기준끼리 조화, 불화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컨대, 삶에 도움(利)이 단맛이라도, 남의 평판이나 양심, 도덕률에 걸리면 쓴맛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묻이다.
어쨌거나 사람은 단맛나는 마음(好意的)이 붙은 것을 가까이 있게 하려고,
쓴맛 나는 마음(惡意的)이 붙은 것을 멀리 하려는 의사(意思)를 품게 된다.
그런(긍정, 호의적 또는 부정, 악의적) 마음이 없으면, 그래서 아무 맛도 모르면 무엇을 하거나, 안 하려는 일이 없게 되니......
좋아하는 마음(맛), 싫어하는 마음(맛) 덕분에 잘 살기도 되고,
또, 그런 마음(맛) 때뭔에 잘 살기에 지장이 되고 시련과 난관, 역경에 빠지게도 된다.
그러니, 마음(맛)을 맹신, 맹종하지 말고 현명하게 다스려야 하는데.....
지구는 우주의 일부이다.(自然)
산은 산이고 물은 물 이다.(山是山 水是水)
"높고 아름다운 산에 오르고 싶고, 깊고 사나운 물이 무서워서 싫다"(마음으로서의 산맛, 물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