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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 없는 부자 거지.

나 아닌 내 2020. 2. 6. 10:29

여기서 부자니, 거지니 하는 말은 경제적, 물질적 소유의 정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 행태가, 그 행태의 원인인 의식(意識)이 "나 에게는 줄 것이 많이 있다"인지, "나는 가난해서 받아야 할 것이 많다"인지를 기준으로

전자를 부자근성, 후자를 거지근성이라 하는 뜻으로 쓴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재벌이라도 거지근성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위 청빈거사(淸貧居士)라도 부자근성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사람이 모태에서 나오는 순간에는 -유전적인 본성을 제외하고는- 세속적인 그 어떤 근성도 없었다고 본다.

살아 오면서 마음(意語)이라는 씨앗이 심어져서 그게 싹이 트고 자라서 깊이 뿌리 박히게 된 것이 근성(根性)이다.

근성이기 때문에, 그게 오래 된 것은 거의 타고 난 본성과 같아서 "어쩔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 말해 준다면..." 

노사연이 부른 [바램] 노랫말의 일부로 많은 여인네의 공감(同意)을 일으킨다는 ......


여기서 "지친 나", ".......주기를 바라는 나" 등등은 그 모두가 마음이지,

실제의 사실이 아니고, 실제 사실과 상관있는 마음도 아니다.

단지, 실제의 사실과 상관이 있는 것 처럼, 실제의 사실인 것 처럼 혼동(의식적인 投射, 投影)됨이 있을 뿐 이다.


필자의 이런 글을 대하면, 사람들(그 노랫말에 동의, 공감한다는)은 펄쩍 뛰리라.

네가 당사자 아니니 알리가 없지,  네가 남자이니 다 똑 같지....하면서.

그렇지만 차분히 진지하게 검토해 보시라.


그런 노랫말에 동의하면 할 수록 마약에 도취하여 부작용이 더욱 커 진다는 것을,

그래 다른 의견도 경청하여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서 손해 볼게 없쟎은가...하면 스스로 해탈할 능력을 계발해 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사람의 두뇌 속에는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능력이 무한(무한정)으로 내장되어 있다.

단지, 스스로 계발해서 쓰지 않는 한 없는 것과 다름없고, 계발해서 쓰기로 하면 무한한 크기의 백지와 같이 온갖 그림이 가능하다.

바로 부자근성도, 거지근성도 뿌리 내릴 수 있는 바탕이 그 잠재력이다.


그 잠재력이 무한이기 때문에 그 어떤 후천적인 근성(根性)도 고치거나, 바꾸거나, 뽑아 버릴 수도 있는 능력도 포함된다.

거지근성을 그냥 버리거나, 부자근성으로 바꾸거나, 둘 다를 가지거나 버리거나 그 어떤 선택도 허용하는 잠재력이다.


나는 지쳤다(지친 나)는 마음을 그냥 가지건, 그냥 버리건, 나는 지치지  않았다고 고치건, 나는 강건하다는 마음으로 바꾸건 내

스스로 선택하는 그대로를 포용하는 것이 내 안의 잠재력이니 그 얼마나 부유한가?


나는 위로받기가 필요하다(사랑받기를 바라는 나)는 마음을 그냥 가지건, 그 마음를 그냥 버리건, "나에겐 위로가 필요치 않다"는 마음으로

고치건,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받고있다는 마음으로 바꾸건, 그런 마음 모두를 초월하자고 하건 내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해도 포용하는

내 안의 잠재력이니 이 또한 멀마나 부유한가?


위와 같이 보이지 않는 잠재면을 살펴서 능력이 무한한 부자임을 알 수 있지만,

그걸 살펴 보지 못 하거나 안 한다면 잠재해 있는 능력을 어찌 알겠으며, 모르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럴 때 보이는 것은 지금의 그 거지같은, 애걸 구걸하는 마음뿐이니, 그게 당연하다 여겨질 수도 있겠지....  


배우자도 나를 위로하고 사랑해 주지 않는다, 

자식들도 엄마의 아픔과 수고로움을 몰라 준다.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고 지쳐서 괴롭고 아프다.

나는 인정받고 위로받고 사랑받고 싶어, 싶어, 싶어, 싶어............(너무나 가난해)

받고싶은 걸 받아야 행복하고 못 받으면 불행하다, 이런 마음이 바로 -마땅한 것 같은- 거지근성이다.


배우자가 가정에서의 책무를 다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자식들이 걱정끼치지 않고 잘 자라주니 기특하다,

내 할일 다할 수 있게 몸 건강하니 이 또한 다행이고...

모두 모두 다행이고 고맙고, 그러니 나도 신명나게 잘해 주어야지..., 이런 마음이 부자마음이다.


부자 마음에는 부자 마음이, 거지 마음에는 거지 마음이 서로 어우러진다. (類類相從)

고마워하면 아니 네가 더 고맙지(부자끼리), "너는 무성의해, 너야 말로 무성의해(거지끼리)

부자마음엔 강건한 몸이, 거지마음엔 병약한 몸이 상종하고,

부자마음엔 시비분별을 포용하고 초월하는 대범한 인간관계가, 거지마음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편협한 아귀다툼이 펼쳐진다.


"나는 거지이니 줄 것이 없고, 받고싶은 것 뿐 이고, 너는 부자이면서 안 주니 인색하고 밉다"는게 거지 근성이다.

우매한 안목에서는 "주지는 않고 받기만 함"이 얼마나 이익일 것 같은가?

현명하다면 "받으려면 먼저 주어야 하고, 받았으면 주어야 한다"는게 보통 사람들 상호관계의 철칙임을 모르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