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오직 두뇌 속(의식계)에 있을 뿐 이지만....
사람의 두뇌 바깥에는 "행복", "幸福", "happy" 등 글자나 그걸 읽으면 나오는 사람의 음성말고는,
그에 해당되는 어떤 실체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보거나 만지면서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이게(저게) 행복(또는 불행)이구나..." 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그 밚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행복은 어디에, 어떻게 있을까?
먼저 말해 둘 것은, 사람이 아는 것은 두뇌 속에 떠 올라 있는 의식(意識) 뿐이기 때문에,
두뇌 속에 떠 올라 있는 것(意識)은, 그에 해당되는 것이 두뇌 밖에 없어도 알고,
두뇌 속에 떠 올라 있지 않으면, 두뇌 바깥에 실제로 있는 그 무엇도 모른다는 불변의 진리이다.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와 상대적인 "행복이다"는 말의 약칭이다.
"행복"이나, 그에 부가되는 "이다(是)", "아니다(非)" 역시, 두뇌 속의 마음이지, 두뇌 외부에 있는 것을서술하는 말이 아니다.
"행복"이니 "불행(행복 아님"이니 하는 것 일체가 두뇌 외부와는 전혀 무관한 두뇌 속의 의식적 구조물(?이다.
1. "행복"이라는 이름(名)이다.
2. 그 이름에 연결할 정보(기억이나 상상인 識)가 냇적인 조건(因)이다.
3. 위의 2에, 그렇지 않는 정보(識)에 비하여 상대적인 마음(평가와 판단인 意)이 부가되어 있다.
예컨대, 두뇌 속에 "재산이 100 억"(남의 재산이나, 자신이 바라는 상상액인 識)에다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러면 좋겠다, 바란다, 실현해야 한다, 살기에 편하고 도움이 되겠다" 등등의 긍정(好意)적인 마음(意)이 부가되어 있는 행복의식을 행복이라고 약칭한다.
그 이외에는 두뇌 속이나 바깥에나, 그 어떤 행복도, 불행도, 행복도 불행도 아닌 것도 없다.
행복의식에서 의(意) 부분을 마음, 마음씨, 의미어, 의미라 하고 식(識) 부분을 내부적 조건(原因)이라 하고, 그 정보(識)에 해당되는 욋적인
상태를 욋적인, 실행할, 실현된 조건(緣)이라고 한다.
이 행복의식을 말로 주장함을 행복을 설명, 그 것에 관한 평가와 판단을 행복론이라 하고,
현실에 적용하여 봄을 투사, 보임을 투영이라고 하고, [현실/행복]을 행복지수, 행복평점이라고 한다.
위의 예(100억원이면 행복)를 자기의 현재산(10억이라 가정)에 적용하여서 보면(投射), 1/10, 즉 10%의 행복지수(90%의 불행지수)로
보인다(投影)
여기까지 이해하게 되면 행복하게 살기(즉, 100% 이상의 행복지수를 누리며 살기)나, 불행에 빠져서 살기(마이너스 행복지수)가
너무나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물질적인 성취는 복잡하고, 어렵고 힘들 수 있지만, 심리적인 행복, 불행은 너무나 쉽다는 것을....
그렇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것의 정체를 모르고 오해에 빠져 있다.
행복의 냇적인 조건(識)은 자유자재가 가능한데도, 욋적인 조건에만 매달려 있으니 말 이다. (기대치를 100억에서 10억, 5억, 1억으로 내리기가
어째서 어려운가..., 안 해서 그럴 뿐 이지...)
그러니, "불행은 싫다, 행복을 바란다"면서 하는 짓 마다가 "행복은 안해, 불행은 할꺼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