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얼까?
내가 무얼까?
이 물음 하나로 얼마나 오렌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답읋 찾아 헤맸는지....
그런데, 그 누구도 "내를 만났다"는 사람이 없었고, "내를 찾았다"는 사람도 없었고, "내를 알았다"는 사람도 없었다.
왜 그럴까?
"내가 무얼까?" 하고 말 하는 내가 바로 내(自)이기 때문이다.
이미 내(自)이니, 또 누구를 내(自)라고 만나고, 또 누구를 내(自)라고 찾고, 또 무엇을 대상으로 하여 내(自)라고 알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내를 알 수는 없고,
단지 스스로(自)임을 깨닫기(覺)를 할 수 있다고,
자각(自覺)을 하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게 있어 왔다.
그런데, 그 깨달음이란 것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그 어떤 설명도 - 하지 않는다 하면서 - 못 하였다고 나는 본다..
"내(自)가 내(自)로 있구나", "내가 내 이구나" 하는 말이 나오는 근거가 바로 자각(自覺)이다.
잠 에서 갓 깨어나서 "내가 -잠에서 갓 깨어 나- 있구나" 하는 것도 자각이고,
무언가를 알면서, "저걸 아는 내가 있구나" 하는 것도 자각이다.
자각, 결코 어렵지도 않고 그리 쉽지도 않다.
한번 자각하고 나면 너무나 쉽고, 한번도 자각하지 못 하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내(自) 있는 곳은 어디일까?
이 사람의 몸에 있다는 것은 그냥 인정하기를....
이 몸의 눈에, 귀에, 손에, 가슴에 있지 않다는 것도 인정하기를.....
그런 다음에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하나의 예를 제시하련다.
어떤 사람이 사무실로 찾아 와서 "심 아무개 맞지? 나, 자네 어릴 적 친구 최백호의 형 최대호일세" 한다.
조금 지나자 "아, 기억이 난다, 백호네 대호형님이시군요" 하는 발언이 나온다.
눈 앞의 대호형님을 제외한 그 나머지 "어릴 때의 대호형님, 그 아우 백호"를 내가 안다.
그들이 눈 앞에 없는데, 어디에 어떻게 있길래 내가 알까?
이 몸의 두뇌 속 의식계에 저장되어 있던 의식(意識 =기억)이 떠 올라 있어서 안다고 인정하기를...
자, 여기서 두 가지의 질문을 독자님에게 낸다.
첫째, 두뇌 속에 떠 올라 있는 기억을 아는 내(自)는 어디에 있을까?(어디에 있을 수 밖에 없을까)
둘째, (만약에 내가 두뇌 속에 있다면) 두뇌 바깥인 눈 앞에 있는 대호 형님을, 두뇌 속의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답은 단순하다.
의식을 아는 내(自)는 두뇌 속에 있을 수 밖에 없고, 내가 두뇌 속에 있으니 내가 아는 대상 또한 두뇌속 의식일 수 밖에 없다.
눈 앞에 있는 대호를 직접 아는 것이 아니라, 두뇌 속에 형성된 시청각적 정보(생방송과 같은)를 내가 알 수 밖에.
이제, 이 정도면 사람의 아는 일을 하고,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을 부리고 두뇌의 사고기능을 다루는 내가 어디에 있는 무엇인지
어느 정도는 짐작도 이해도 가능하리라 본다만....
이해가 안 되거던 실험해 보시기를...
눈을 뜨자, 감자,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서 보자고 감각신경을 부려 보자.
손을 들자, 허리를 돌리자, 걸어 가자, 달리기를 하자고 운동신경을 부려 보자.
초등시절, 군대시절, 시험치던 시절, 직장시절을 떠 올려 보자, 우주의 시작과 끝을 가상해 보자, 이 일을 하나 마나를 미리 비교해 보자고 두뇌의 기억, 상상, 사고신경을 부려 보자.
다 아무 제약없이 할 수 있으리라, 내가 할 수 있는 내 일이기 때문이다.
고로 안 하면, 내 일이 아닌 것 처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