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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錯覺)과 자각(自覺)의 사이(間)에 내(自)가 있다.

나 아닌 내 2020. 2. 17. 14:38

여기서의 "깨달음(覺)"은 무언가를 아는 자 "스스로(自)가 -그 무엇과도-  따로 있구나" 하고 알아차림을 뜻 한다.

"따로"라 하지만,  딴 무엇과 멀리 떨어 져 있다는 뜻이 아니고, 딴 것과 섞일(錯) 정도가 아니라는 뜻 이다.


무언가를 안다는 일이 성립되려면

무엇(주체)이, 아는(행위), 대상(객체)의 3요소가 필수적이다.

중간의 아는(행위) 방향이 대상(객체)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알기, 앎, 아는 것 이라고 하고,

그 아는(행위) 방향이 주체에게로 뒤 돌아 오는 것을 깨닫기, 깨달음, 자각이라고 한다.


내가 아는 "것"으로 향함이 통상적인 알기, 앎이고,

무엇을 아는 "내"로 되 돌아 향함(返照?)이 - 통상적으로는 몰라서 거의 없는-  깨닫기, 깨달음이다.


내가(주체), 아는(주체의 행위), 것(객체)의 관계는 그 어떤 경우에도, 그 어떤 방법으로도 서로 섞이거나 관계가 바뀌지 않는다.

고로, 내가 - 스스로 깨닫기나, 대상을 아는 일을 하건 말건- 내(自)는 본래 그대로 불변이다.

깨달은 행위로 깨달음을 가졌다고  깨달은 정신으로 변하는 것 아니고, 아는 것 중의 나(我意識)를 내(自)라고 착각(錯覺)이 일어났다고  

착각에 빠진 정신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는 틀림없이 그렇다)


비유하자면, 이 사람의 내(自)가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면서, "내가 지금 관람석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의 두뇌 속에 있구나" 하고 자각한다고

달라질게 무엇이고, 영화가 "실제 현실이고, 그 속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내가 있다"는 착각(錯覺)이 발생한다고 내가 달라질 것도 없다.

단지, 자각하면 착각이 발생하지 않고, 착각을 깨닫지 못 하는 동안은 자각도 할 수 없다는, 어찌 보면 작은 차이이고, 또 달리 보면 어마 어마한

차이이기도 하다.


불평, 불만, 괴로움(그리움, 미움, 실망, 좌절)의 원인은 그 모두가 착각(錯覺)에서 발생한다.

착각이 없으면 발생하지 않는다.

바로 착각(錯覺)에 빠진 것 처럼임을 깨달아서 알라고 - 즐거움(快)을 당근(상)으로 예비해 놓고- 괴로움(苦)을 주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