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利心)인가, 해심(害心)인가?
어떤 마음(心)이 이로운(도움이 되는)가, 해로운(해로움이 되는)가를 구별할 필요(실익)가 작지 않다.
사람은 그 누구나를 가릴 것 없이 "마음대로 하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안 하기"나, 마음과 다르게 하기"로 사는 사람은 전혀 없다.
얼핏 알기로는 "마음대로 못 하고 산다",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마음대로 하고싶지만 안 한다" 하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그 마음이니, 그 마음대로 한다는 것에 추호도 다름 아니다.
단적으로 "마음대로 안 한다"는, 그런 마음대로 하는 것 이니까. 그 또한 "마음대로" 아니고 무언가?
"마음대로 하면서 산다"는 점 에서는 누구나 같지만, 그리 하여서 잘(건강, 안전, 평안, 순탄) 사느냐 여하(如何)는 또
하나의 마음꺼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잘(利롭게) 살게 된다면 그저 "마음대로 살기"를 따르면 그만인 정도가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 하겠지만,
잘못(害롭게) 살게 된다면, "마음대로 살기"가 아니라, 당연히 그런 마음부터 고치거나, 바꾸거나, 버리거나 해야 한다.
세상에는 누구나 "마음대로 하고 살기"를 하지만, 하기 이전이나 이후에라도 "그런 마음대로 하기"를 잘(利), 잘못(害)의
차원에서 반성은 켜녕, 대부분의 사람들이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첫째, 그 사람의 -두뇌 속에서 두뇌를 써서 아는 일을 하는- 정신이, 자기라는 사람(전체)에 관하여 통찰적으로 알지 못 하고,
제(그 정신 자신) 앞에 등장하는 "자기 자신(我意識)"을 그 사람이라고 -누구나 그리- 알 뿐 이다.
아무리 양적으로 늘려서 알아도, 질적으로는 그 이상이 아니다.
자기의 삶, 자기의 정신인 내, 자기의 마음인 의식중의 의(意)의 3각관계를 제대로 모르고, 마음만 알고 따르기 일쑤다.
둘째, 그 사람의 정신이 자각(自覺)이 없이, 마음(意)을 자신아라고 착각(錯覺)에 빠져 있다.
예컨대, "죽어야 한다, 죽고싶다"는 마음(意)이 내 자신아라 여겨지는 착각에 빠져있다면 "자기(사람)를 죽임"을 어찌 여기리오.
셋째, 자기(사람)와, 자신(정신)과 마음(我意)의 관계를 상하인 수직적 주종관계로 보지 못하여, 오히여 그 순위가 전도되어 있다.
자기(사람)의 삶을 지키라는 명령(生命), 잘 운전하라는 명령(運命)을 받은 내(정신)가, 자기의 삶에 해로움이 없고 도움이 되겠금
(목 적) 스스로 주도하여(自主) 마음(意語)을 만들고, 쓰고, 고치고, 바꾸고를 해야 올바른데도,
오히려 거꾸로 마음대로를 으뜸(主)으로 맹신, 맹종하여, 자기의 삶을 수단이나 도구처럼 희생하기를 예사처럼 해 댄다면?
사람마다 두뇌를 써서 마음을 다루는 정신을 하나씩 가지고 살지만, 그 정신의 성실성과 근면성 여하에 따라서는
필수 불가결한 충신같은 정신일 수도 있지만, 천하의 애물단지 보다 더 고약한 패역무도한 역신일 수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마음은, 자기의 삶(人生)에 과연 도움이 될까, 해로움이 될까, 검토라도 해 보았던가?
내, 과연 이 사람(자기)에게 -보물같은 충신인지, 악마같은 역신인지- 과연 어떤 정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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