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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있는 것이 없고, 없는 것이 있다"는 말만 있을까?

나 아닌 내 2020. 3. 8. 10:43

있으면 있다 하고, 없으면 없다 한다.

있는데 없다 하거나, 없는데 있다 하지는 않는다.

이상이 우리가 아는 소위 상식적인 말 이다.


"있는 것이 있다"는 말은 소위 "곳갑이 달다"는 겹말 같아선지 별로 쓰지 않는데,

그와 유사한 것 같은 "없는 것이 없다"는 말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쓰여 진다.

왜 그럴까?


"있는 것이 없고,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은 얼핏 보면 모순적이다.

있지 않는(없는)데 있는 것 이라니, 없지 않는(있는)데 없는 것 이라니...

왜 그럴까?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전혀 모순이 아님을 알게 된다.

같은 하나를 동시, 동소(同所)에다 놓고서 있다, 없다를 다 부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다른 둘을, 각각 다른 두 곳에 두고서 서로 같은 것 처럼 아는 것도 정상이 아니다.

바로 여기에 해답의 단초가 숨어 있다.


다른 두 개가 같은 하나로, 따로인 두 곳이 한 곳으로만 보(이)는 비정상인 현상 때뭉이다.

바로, 두뇌 바깥의 사과와 두뇌 속 사과는 같은 하나가 아니고 다른 둘 이고, 한 곳에 있지 않고 딴 두 곳에 따로 있다.

그런데도, 그 중의 하나만 유시(有視=있다고 여겨짐)되고, 한 곳만 유시(有視)되면 딴 곳의 딴 것은 무시(無視 =없는 것 처럼 여겨짐)된다.


자, 이제 제목의 뜻을 풀이해 보자.

1. "있는 것이 없고"는, "두뇌 속에 있는 것(예: 사과기억)"이 두뇌 바깥에는 없다는 뜻 이고,

2. "없는 것이 있다"는, 두뇌 바깥에 없는 것(예: 실물인 사과) 이 두뇌 속에 있다는 뜻 이다. 

3. 둘을 종합하면 눈 앞에 "사과"는 있는데, [사과]는 없다는 뜻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눈 앞"이 [눈 앞]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 정확히 말 하자면, 두뇌 속의 " 기억인 사과는 있고", 역시 두뇌 속의 "눈 앞의 사과"는 없다고 해야 제대로다.

이 얼마나 복잡한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의 두뇌 속에서 왜 이렇게 애매 모호하고 복잡한 일이 발생할까?

바로 그럴 필요가 있어서다.

두뇌를 매개로 하여 바깥을 알고, 바깥에다 실현하려면 그럴 필요가 있어서다.

만약에 그렇지 못 한다면, "내는 두뇌 밖의 아무 것도 몰라, 아는 건 모두 두뇌 속 뿐이야" 하면 무엇을 안다고, 실행할 수 있겠는가?


비록 그럴 필요가  있더라도 두뇌 속과 바깥은 엄연히 다르다. (같은 하나라고 혼동, 착각하는 건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한다.)

예컨대, 두뇌 속에만 있는 것(소위 미련)이 두뇌 바깥의 일 처럼 여겨져서 실제론 있지도 않는 혼란을 자초하여 헤매는 일,

두뇌 속에서만 해소 가능한 일을 두뇌 바깥에서  -폭음, 마약, 폭행, 난동등으로- 엉뚱하게 해결하려다 부작용을 초래하는 일 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이 "오직 지금 두뇌 속에 떠 있는 의식"(一切唯心)이지만,

그 중에서 "기억이나 상상인 것"과 "생방송인 것"의 구별만은 정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있는 것이 없고, 없는 것이 있다"는 혼란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 두뇌 속에 "있어야 한다고 바라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거나 없다고 하면 이해도 쉽고 적응하기도 쉬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