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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바랄 수, 할 수, 될 수 )의 심판.

나 아닌 내 2020. 3. 22. 15:08

사람(그 정신)이 두뇌 속에 무언가를 가상(假想)해 놓고 하는 일을 크게 세 가지로 구별할 수 있겠다.


첫째는 바람직한(望)가를 검토함이다.

 그 가상대로 실행, 실현되면 어떨까 하는 평판(意)에 따라서 바람(望), 바라지 않음(不望)이 정해 진다. (마음대로)


둘째는 할 수 있는(能)가를 검토함이다.

그 가상대로를 실현하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나 여하를 판단하여 할 수 있음(能), 할 수 없음(不能)이 정해 진다.(자기 능력)


셋째는 될 수 있는(成)가를 검토함이다.

누가 어떻게 하면 되느냐 여하를 판단하여 됨(成), 안 됨(不成)이 정해 진다. (되는 이치)


이상 세 가지는 보기 나름으로 가치 우선 순위를 정할 수가 있다.

소위 마음 가는대로(첫째)를 첫째로 할 수도 있고,

되는 이치대로(셋째)를 첫째로 할 수도 있고,

내 능력대로(둘째)를 첫째로 할 수도 있다.


발생순서대로 보자면 위의 순서(마음, 능력, 성공)대로 가치를 매길 수도 있고,

되는 결과를 우선적으로 본다면 되는, 할 수 있는 다음 순서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사람들은 어떤 순서대로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와 같은 순서를 매길 줄을 아예 모른다.

제일 먼저 일어나는 마음(되면 좋겠다, 또는 되면 좋지 않겠다는 등)을 잡은(執)듯, 붙잡힌(着)듯에 고정된다.

그래서 제 스스로 할 수 있느냐는 물론이고, 되기나 하겠는지 조차 검토하려고 하지 않는다.


할 수 있나 없나는 물론이고, 되나 안 되나 조차도 도외시하고 "되면 좋겠어, 되어야만 해"에 머무니 어렵고, 괴롭고, 헛고생이 심하지..

된다, 안 된다고 검토해 보아도 오판이 될 수도 있는데, 아예 검토조차 하지 않으니.........

할 수가 없고, 해도 되지 않을 일을 "마음대로 되어야만 해" 하고 "바람을 옳지 않다(不可望)"고 하기는 너무나 쉬운데도 못 한다, 왜?


두뇌 속에서 무언가를 바란다고 남이 아는 것 아니니, 남이 하라 말라고 돕거나 방해할 수도 없고,  세금 내거나 책임질 일도 없으니,

그야 말로 바란다는 그 마음대로 바라는 지 모르지만, 그로 인하여 그대로 실행할 수도 없고, 아무리 애써 하여도 제대로 될리도 없는

일이니 애 타고, 속만 타고, 옆 사람에게도 불편만 끼치게 된다는 것을 알기가 그리 어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