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의 차원과 말과 무관한 차원.
사람의 말 중에는, 감각적 경험을 그대로 진술하려는 서술어(述語)와,
어떤 정보(識)와 딴 정보(識)를 상대적으로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하는 의미어(意語)가 있다.
전자(術語)는 주로, 두뇌 바깥에 있는 것과의 감각적 경험을 진술하는 말 이지만,
어디까지나 진술하는 그 사람의 말(발언)일 뿐, 실제의 사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실제의 사실과 술어가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같다느니, 다르다느니 하는 시비의 대상이 된다.
사실 그대로를 진술할 수도 없고, 진술 그대로가 실제 사실일 수도 없다.
그런데 이 구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여 혼동하는 일이 너무나 보편적이다.
말(소리)만 듣고도, 그런 말로 묘사되는 사실이 실제로 있다고 믿거나, 거짓말이라고 믿거나 하는 일 이다.
하긴, 그렇게 혼동되는 것 만큼 말의 효율이 높아지는- 당연히 부작용, 역효과가 발생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또 하나의 말은, 사람의 두뇌 속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정보(識)를 딴 정보(識)와 상대적으로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한 결과로서의 말로 비교 평가어라 할 수 있지만, 줄여서 의미어, 의어(意語), 의(意)라고도 하여, 그 정보(識)에 부가되는 식으로 형성되고, 표현된다.
물론, 그 작업과정 전반이 제대로 정확히 표현되지 않고, 결과물(意)만 표현되는 경우가 보편적, 통상적이다.
예컨대, 갑은 그 학급에서 누구에 비하여 구체적으로 -체격이, 학업 성적이, 인품이 어떠해서 좋다 또는 나쁘다는 식으로 말 하지 않고 "괜챦은 편이지..", "좋은 사람이지", "나쁜 인간이야" 하는 식으로말 하고, 그대로(그런 사실이 있는 줄)믿는 식이다.
실제 사실과,
그걸 표현한다는 서술어(述語)의 차원에서도 가 가지 문제가 많이 발생하지만,
실제 사실을 딴 사실에 비하여 어떻다고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하는 말인 의미어(意魚 =통상적인 마음이다)의
차원에서는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 질 수도 있다.
의미어(意語)와 관련되어 발생하는 문제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예컨대 "좋다"는 말은, 두뇌속 작엽의 결과물인 언어일 뿐, 두뇌 바깥의 사실과는 전혀 무관한데도 사실처럼 혼동된다.
"아무개는 좋은 사람"이라 하면, 그 사람의 두뇌속 주관적 평판 작업의 결과인 의견일 뿐인데, 실제로 좋은 사람인 것 처럼 혼동되기도 하고, 그 혼동에 저항하여 아니라 하기도 한다.(타인의 두뇌속 주관에 남이 아니라 하다니.....)
2. 예컨대 "좋다"는 말은 아무 사실적 진술이 없는데도, 그런 평판(意語 =마음) 자체를 사실이라 진술, 주장하는 것 처럼
혼동된다. (무엇이, 무엇에 비하여 어떤 점이 좋다고 하지 않고, 무엇이 좋다고만 하여도 그걸 사실적 근거를 갖춘 진술처럼 혼동)
이상을 제대로 구별하여 아는 사람이라면,
남이 구체적 진술이 없이 무언가를 좋다거나 나쁘다고 할 때 다음의 선택에 자쥬롭다.
1. 그래? 왜 그렇게 (평가, 판단) 여기는데? 하고 묻거나,
2. 그래? 네 마음이 그렇구나...하고 아는데 그치거나,
3.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이리 저리 비교, 평가, 판단해서- 그게 좋지 않다고 여기는데...." 라고 주장하거나......
의현(意見 = 마음의 표현)이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걸 문제로 삼을 수도 있고, 삼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삼는다면, 왜 (누구의 무엇을 위하여) 문제 삼는지 부터 선결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각자가, 자기의 마음(흔히들 "의견"이라 하는 것)을 기준으로, 그와 다른 의견을 심판하면 결과는 뻔할 뻔 이다.
서로가 같은 소리인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틀렸다)"를 주거니 받거니로 그칠 수가 없다고.(실상으론 그치기 쉽지만..)
말이 통하면 편리한게 얼마나 다중대(多重大)한가?
말이 불통하면 불편한게 얼마나 다중대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