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놈이 망하고, 죽일 놈을 죽이면?
망할 놈이 망하면,
죽일 놈을 죽이면,
속이 시원하겠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바라는대로 되지 않고 할 수 없으면,
속이 시원하지 않을 뿐인가, 울화통이 꽉 차서 미칠 지경일 정도인가 물으니,
불난 집에 부채질 하냐고 내게다 화를 낸다.
망할 놈을 망하라고 바라기만 할게 아니라, 망하게 할 수는 없는가?
죽일 놈을 죽이고 싶다고만 바랄게 아니라, 죽일 수는 없는가?
너무나 쉽다, 제대로 알면.
망할 놈, 죽일 놈 모두가 복합적 언어이다.
"망할"과 "놈"의 복합이 "망할 놈"이고,
"죽일"과 "놈"의 복합이 "죽일 놈" 이다.
그런데, 그 "놈"이란 것은 만나서 눈 으로 모습을 보거나, 귀로 소리를 듣거나, 손 으로 몸을 만질 수가 있지만,
(물론, 죽어서 없는 기억이나 가상속 인물도 있지만) "망할"이니, "죽일"이니 하는 말에 해당되는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왜 그럴까?
"놈"은 대체로 실존해 있거나, 실존해 있었거나, 실존해 있을 가상을 지칭하는 말로 대체로 특정된 사람이 그 대상이다.
그렇지만 "망할"이나 "죽일"은 "흥할"이나 "살릴, 도울"과 같은 상대적인 언어(意)로서 소위 "마음"으로만 있다.
종합하자면, 두뇌 속의 마음인 "죽일"이나 "도울"이란 상대적인 언어가 어떤 사람을 지칭하면서 투사, 투영되면
"죽일->투사-> 놈", "도울(살릴)->투사-> 사람"으로 투영(投影)되어 알려지게 된다.
"망할 놈", "흥할 사람"도 꼭 마찬가지다.
여기까지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망할 놈 망하게 만들기, 죽일 놈 죽게 만들기가 너무나 쉽고, 부작용을 포함하는 후환도 전혀 없이 할 수 있음도
짐작할 수 있어야 정상 아닐는지....
그 망할 놈, 죽일 놈 중에서 "놈(사람)"은 건드려서 부작용이나 후환이 전무하기란 거의 불가능 하다.
그래서 그토록 애타게 바라면서 속만 태우고 있쟎은가....
그렇지만 그 "망할"이나 "죽일"은 이 몸의 두뇌 속 -그저 말 소리일 뿐인- 마음(意)에 불과하니, 내가 결정만 하면 그걸
죽이건(그냥 두건, 크게 살리건), 망치건(그냥 두건, 크게 흥하게 하건) 내 자유를 방해할게 무엇이 있는가....?
"망할 놈"에서 "망할"을 떼어 내(죽이)고 나면, 망할 놈이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죽일 놈"에서 "죽일"을 떼어 내(죽이)고 나면, 죽일 놈이 살아 있을 수 있겠는가?
정신(내 자신)이 현명한 사람은, 자기 두뇌 속에 자신도 알고 있는 "죽일 수 없는 그 사람", "망하지 않는 그 사람"을 "죽일 놈", "망할 놈" 이라 하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
설사 순간적으로 그런 마음이 생겨났더라도 알자 마자 단번에 -사람이나 기억, 상상은 그대로 두고- "죽일"이니, "망할"이니 하는 마음만 죽여 없새버린다.
여기까지 이해하게 되면 정신(내 자신)이 우매한 사람, 너무나 안타깝고 불쌍하다 여길 수 있으려는지....
미워하는 저주하는 마약같은, 병적인 쾌락에 도취하여 깨어나려 하질 못하는 정신을 거느린 주인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