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3각(脚)이, 3각(各)으로 .....
한 사람(1人)이 있다.
그 에게 생명, 정신, 의식이라는 세 개의 다리가 있다.
그 셋이 각(各), 각, 각이 아니라, 한 사람(1人)에 속해 있는 세 다리(覺)이다.
따라서 그 세 다리는,
1. 그들이 속해 있는 그(자기) 한 사람을 위해서(쓰려고), 그 (자기) 한 사람이 만든, 그 (자기) 한 사람의 다리이니,
그(자기) 한 사람의 안전, 건강, 순탄, 평안한 삶을 걷도록 돕는 일에 공동의 보조를 맞춰서 상보(相補) 상조(相助)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그 세 다리는,
2. 그 중의 셋 모두는 물론이고, 그 중 하나라도 제 각각(各各)인 것 처럼, 행세하느라 자기의 삶에 장애와 위험, 고장과 질병, 불화와 투쟁, 불안과 공포를 야기하지도, 방임하지도 말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사람들, 그 한 사람들의 삶은 어떤가?
뒷 좌석의 주인은 생명력을 주어서 앞 자리의 정신과 의식이 위의 1과 같은 역할을 다해 주기를 바라고 채찍과 당근을 구사하고 있지만, 의식은 제게 있는 그대로의 정보(識)와 마음(意=평가와 판단)만이니 그 길로만 가려 하고,
정신은 주인이 주는 고통이 싫다, 마음이 주는 불평 불만도 싫다, 그저 내 하나 편하고 싶다는 길로 멋대로 가려 한다.
그 중의 가장 큰 문제 다리가 어느 것 인가?
생명은 아무 문제가 없고, 문제가 있어도 정신과 의식은 도와야지 멀리하거나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
의식은 만들어지는 그대로로 있을 뿐, 의식이 의식을 만들지는 못 하니 그 또한 문제가 없고, 있어도 의식의 문제가 아니다.
남는 것은 오직 하나, 바로 내 자신인 정신이다.
스스로 의식을 자유자재로 만들고, 고치고, 바꾸고, 버리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소위 "내 탓이오" 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운 사람(意識)이 그리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의식이지만,
"그런다고 만나서 잘 살 수도 없는 길을 걸으면 이 한 사람의 인생을 크게 해친다, 깔끔히 포기하자"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다리가 바로 내 자신이니까.
"미운 사람(意識)이 미워" 하는 의식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