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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마음 붙이기" 나름이지....

나 아닌 내 2020. 7. 15. 04:30

사람들이 더러 주고 받는 소리,

다, 마음 붙이기 나름이지...

 

글자 수로 열 글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풍원처럼 내고 들이기에 크게 쉽지도, 어렵지도 않을 것 같은데,

정작 그 소린지, 말인지...뜻이 무엇인지 아는 이 몇이나 될까?

 

"마음이 마음이지, 마음 붙이기가 마음 붙이기지...그 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어!?" 하는 이는 드물까?

이하, 내 나름으로 그 뜻을 풀어? 세워? 볼까 한다.

 

마음, 사람의 두뇌 속에 생성되어 있는 상대적인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의형식인 말 일체를 의미어, 의어, 줄여서 의(意)라 하는 바, 그 것이 두뇌 속 어떤 정보(識)에 연결되면 하나의 의식(意識)이 되는 바, 그 의(意) 부분을 마음이라 한다.

예컨대, "홍길동(識)은 의적(意)", "의적(意) 홍길동(識)"이라 하는 두뇌 속 의식의 의(意) 부분이 마음이다.

 

언어를 크게 서술어(述語)와 의미어(意語) 두 가지로 구별할 때, 서술어에 해당되는 언어는 두뇌 바깥에서 감각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것을 서술하는 말이지만, 의미어는 오직 두뇌 속에서 생성되어, 두뇌 속의 정보(識)에만 연결될 뿐, 두뇌 바깥에는 추호의 낌새도 흔적도 없다.

 

예컨대 " 1 미터의 나무"는 볼 수가 있지만, 나무에서 "큰" 또는 "작은"에 해당되는 무언가를 볼 수가 있는가?

만약에 볼 수가 있다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같은 크기의 나무를 갑은 크다, 을은 작다고 하는 일은 무얼 보고 생기는가?

 

사람의 두뇌 바깥에는 비교적인, 평가적인, 판단적인, 선택적인, 결정적인 존재는 추호도 없다.

두뇌 속에서 비교해서, 평가해서, 판단해서, 선택해서, 결정해서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알려 질 뿐 이다.

그렇지 않는가?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크다고 보려면 [쿼크]보다는 크니 크다고 여겨서 볼 수가 있다.

물론, 그 무엇도 작다고 보려면 우주보다는 작으니 작다고 여겨서 볼 수도 있고.

또, 그 무엇도 좋다, 소중하다고 여겨서 보면 그겋게 못 볼(여길)게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동거하는 사람을 좋다고 여겨서 보려고 하면 누가 뭐래도 가능하고,

나쁘다, 싫다고 여겨서 보려면 역시 누가 뭐래도 가능하다.

마음은 내가 붙이기 나름이라니까.

 

그런데 과연 그 어떤 마음도 내가 븉이기 나름일까, 아닐까?

여기서 마음(意)에 두 종류가 있으니 제7 의식(意識)에 붙은 마음과 제8 자의(自意)이다.

 

전자는 이 몸의 두뇌 속에 있으니, 타인의 마음은 아니지만, 내가 직접 주도하여 만든 마음이 아니니 내 마음이 아니다.

후자만이 순수한 내 마음이다.

전자는 내가 스스로 주도하여 재평가 내지는 수정, 보완하여 내 마음과 같이 승인하면 내 마음(제8自意)과 같아지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이 몸 안의 이방인 내지는 방해자, 역저같은 마음이 되는 수도 있다.

 

여기까지만 이해하면 두뇌 속의 어떤 정보(識)에, 어떤 마음(意)을 새로 만들어서 붙이기, 고쳐서 붙이기, 바꾸어서 붙이기, 떼어 내기 등등의 작업을 자유자재로 할 수가 있다.

이런 경지를 깨달아야 "마음 붙이기"를 제대로 알고 실행하여 공덕을 쌓을 수가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