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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다루기 너무나 쉽지만, "당신"만은 ............

나 아닌 내 2020. 7. 20. 08:13

마음을 잘 써라.

마음을 잘 다스려라,

마음을 잡아라(놓아라), 가져라(버려라), 채워라(비워라)...

 

위와 같은 등등의 소리를 더러 듣는다.

들은 풍월대로 읊조리는 이도 더러 있다.

그래서 -그런 소리를 내고 들어서- 마음을 잘 -다스리고, 쓰는 일을- 하게 되었던가?

 

말(글)은 감각적 형식으로는 들리는 (바람소리, 새소리와 다르지 않는) 소리, 보이는 (땅, 구름,. 나무, 강물과 다르지 않는) 글자 모양에 더도, 덜도 아니다.

두뇌 속에 그 말(글) 형식이 연결된 뜻(意識)이 있어야, 실질로서의 말 이다.

 

사람들이 말의 형식과 실질을 제대로 구별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에 웃지 못할 일이 예사로 벌어진다.

"말이 말이지", "사랑이 사랑이지", "행복이 행복이지...", "마음이 마음이지", "마음다루기가 마음다루기지.." 라고 알고는

제대로 다 아는 것 처럼 태연한 것을 보고(알면서) 과연 웃어야 하나........

 

"마음다루기"라는 다섯 글자에 뜻이 있는가?

그 다섯 글자에 뜻이 없다면, 뜻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서도 뜻을 찾을 수 없다면, 내 스스로 뜻을 만들어 볼까나..?

내 스스로 뜻을 만든다면 무엇으로, 어디에다, 어떻게 만들면 될까? 등등으로 궁금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는지....

 

각설하고, 이하는 내 나름으로 만든 뜻 이다.

1. 여기서 제시하는 뜻 그대로만 따라서 한다면 마음다루기는 -손 바닥 뒤집기(如反掌) 보다- 너무나 쉽다.

2. 거꾸로 말 하면, 여기서 제시하는 뜻을 무시, 외면하고는 "마음다루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정도를 넘어서 불가능하리라.

 

"당신"만은 2에 해당되지 말기를 간곡히 권하지만....

 

                       [ 마음 다루가 ]

1. 목적

   존재하는 주체인 자기 인생을 안전하고 건강하고 순탄하고 조화롭게 운전해 감에 필요 유익한 마음으로 만들어서 쓰고자 함이 목적이다.

 

2. 행위주체.

   마음다루기를 담당할 행위주체(즉, 내 자신)가 스스로 깨닫고(自覺), 마음다루기를 주도해야 한다.

특히 마음을 내 자신처럼 착각에 빠지게 되면, 그런 정신상태로는 처라리 잠든(정신이 없는) 것 보다 못 하다.

 

3.  대상인 마음.

   다루어야 할 마음의 거의 전부가 제7 타의식(他意識)이다.

자기 두뇌 속에 있으니, 남(타인)의 마음이 아니지만, 자기의 정신인 내 스스로 만든 내 마음(제8自意)이 아니니,

타의(他意)라 할 수 밖에.

 

4. 도구인 내 [말].

   마음을 다루려면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내게 유일무이한 도구는 -형식은 같지만 주체가 다른 언어(言語)가 아닌- 오직 [말] 뿐이다.

주로 우뇌에 있는 내 스스로(自), 좌뇌에 있는 상대(他)인 마음(제7 他意識)에다 질문과 명령의 형식으로 거는 말 이다.

 

5. 다루는 일.

   마음(제7他意識)에 대하여 그 이유나 목적을 질문하고, 그 것을 듣고 [마음다루기]의 목적을 기준으로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하는 말을 주고 받으면서 옥동자를 낳듯이 내 스스로의 마음(제8自意)를 만들어서 처리한다.

 

"그래, 그 마음(제7他意識)대로 하자" 하여서 그걸 내 마음(제8 自意)으로 용인(容認)하거나,

"그 마음은 백해무익이니 버리자" 하거나,

"그 마음을 이렇게 고치면 좋겠으니 그리 하자" 하거나,

"그 마음을 이 마음으로 바꾸면 낫겠으니 그리 하자" 하거나,

"그 마음은 당장은 쓸 일이 아니니, 유보해 두자" 하는 등등의 [말]로 마음다루기는 너무나 쉽다.

 

자, 그렇다면 사람들이 마음다루기를 거의 못 하는 원인이 과연 무엇일까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리라.

 

첫째, 왜 마음다루기가 필요한지, 왜 해야 하는지 목적이 아예 없거나, 명확하지 않거나, 주체(자기의 삶)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런 무목적 내지는 맹복적 상태로 마음다루기를 꼭 하려는 의지를 발생케 할 수 있겠는가?

 

둘째, 마음다루기를 실제로 행할 자 "스스로의 깨달음(自覺)"이 없음이다.

"마음다루기를 해야 하는데.." 하는 좌뇌의 혼잣말은 있는데, 우뇌속 정신이 자각이 없으니 나서질 못 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제가 다루어야 할 대상인 마음(제7他意)을 내 자신의 말, 내 자신의 마음, 곧 내 자신이라고 혼동과 착각에 빠져있으니, 있으나 없는 것 보다 못한 정신상태다. 

 

셋째, 마음다루기는 내 자신의 100% 자유이고, 100% 책임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100% 자유이기 때문에 내가 다루지 못할 마음은 없다는 걸 모르고 "내 마음 나도 몰라, 나도 어찌 할 수가 없어.." 한다.

100% 책임이기 때문에 내가 다루지 않으면 그 누구도, 무엇도 마음을 다루지 못 하고, 그 결과적 책임도 대신 질 자가 없다.

 

넷째, "마음", 그 말의 뜻을 정확히 몰라서 내가 아는 두 가지 마음(제7他意와 제8自意)을 구별하여 알지도 못 하고,

제7 타의(他意)를 내 마음인 것 처럼, 제8 자의(自意)는 내가 만들어서 쓰는 말, 마음이라는 것을 몰라서 없는 것 처럼이기 때문이다.

 

이상을 바탕으로 "40년 전에 사망한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미움" (당연히 제7他意이지, 제8自意가 아니다)을 다루어 보자.

 

먼저, 그 마음을 상대로 [내(자기라는 뜻 이다) 인생에 어떤 영향(도움? 훼방?)이 되는가?] 하고 묻는다.  

그러면 대체로 "도움이 되건, 해로움이 되건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고, 원망스럽고 미운짓을 한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는건 지극히 당연한 인지상정이지" 하는 대답이 나온다. 

 

[그건 네 마음(他意)이고 내 마음(自意)은 자기의 삶에 해로운 마음은 버리고, 도움되는 마음만 용납한다.단호하게 확실히 선언한다]고 말 하면 뭐라 할까?

지금껏 한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을 듣고, 더군다나 그걸 평가할 말이 없을 때의 좌뇌는 순한 양처럼 된다.

지금껏 좌뇌가 저항한게 아니라, 실은 우뇌(정신)가 착각, 혼동에 빠져서 좌뇌에 가세해 있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영화속 장면에 놀라서 구토를 했다면, 영화가 그리 만든 것도 아니고, 좌뇌가 그리 하지도 않았는데,

우뇌가 그걸 실제라고 혼동, 착각해서 소리질렀기 때문이다.

 

원망과 미움뿐이 아니라, 아쉬움과 그리움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런 마음에다 [말]을 걸어서 다루기를 시작만 하면 순식간에 가능하다.

단지, 제대로 모르고 "안 된다, 못 한다, 어렵다, 평범한 사람인 내가 어찌 그런 엄청난 일을..."하지만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