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말(述語)과 상대적인 말(意語=마음)의 구별.
사람들이 "마음(心)"이라 하는 말은 절대적인 말(述語)인가, 상대적인 말(意語)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마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이 하나일 수 밖에 없는가, 여럿일 수 있는가만 확인하면 된다.
거짓말을 제외하고는, 대답이 하나일 수 밖에 없으면 절대적인 말 이라 하련다.
대답이 둘 이상일 수 있으면 상대적임 말이라 하고.
사슴을 사슴이 아나라 할 수도, 말 이라 할 수도 없다.
사슴(짐승의 이름)을 사슴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사슴이 아니"라거나, "말"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어떤 사물의 이름은 대체로 절대적인 말 이다.
또, "붉은 색", "세모꼴", "푸른 산", "소나무"등은 같은 언어권 사람들끼리는 딴 밀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사물이나 형상을 서술하는 말은 대체로 절대적인 말 이다.
반면에 다음과 같은 말은 어떤가?
"있다(有)"는 말과 "있지 않다(不有)", "없다(無)"는 말은 상대적으로 공존이 가능하다.
"이다(是)"는 말도 "아니다(非)와 상대적이다.
크다(작다), 많다(적다), 두텁다(얇다), 깊다(얕다), 높다(낮다), 무겁다(가볍다) 등등 사실적으로 비교된 말도 상대적이다.
좋다(나쁘다), 소중하다(하챦다), 옳다(그르다), 이롭다(해롭다), 정의(불의), 선(악), 행복(불행), 길(흉), 성공(실패) 부유(가난) 등등 가치적으로 평가된 말도 상대적이다.
상대적인 말은 두뇌 외부에서 그 어떤 근거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름으로 절대적 지칭이나, 감각적으로 접촉하고 서술하기가 불가능 하다.
크기를 측정할 수는 있지만, "크다", "작다"를 -그런 상대적인 언어말고- 어디서 접촉할까?
사랑(미움), 행복(행복), 정의(불의), 옳고(그름), 착함(악함)등등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가?
그래서 행복은 신기루니,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니 하지만, 다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사람이 자기나 남의 마음을 아는 듯 몰라서 쩔쩔 매는 원인이 짐작하기 쉬우리라.
사람의 모든 마음이 바로 상대적인 말 그 이상도, 그 이외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단적으로 사랑이라는, 행복이라는 말이 생기고 나서 사랑이, 행복이 생긴 것 처럼 있다.
고로 사랑이라는, 행복이라는 말만 깨끗이 잊거나 지운다면 그 어떤 사랑도, 행복도 없어진다.
미움도, 불행도, 근심도, 걱정도, 불안도 마찬가지다.
사물이, 사물의 존재상태가 있어서 그걸 알고서 그 것에 이름을 짓고, 서술어를 만든 것이 언어의 발원인데,
상대적인 말의 경우는 그게 거꾸로 시작은 했지만, 중도에서 상대가 많아서 우왕좌왕 헤매고 있을 뿐 이다.
"코끼리"라 하기 전에 짐승이 먼저 있고, 그 것을 접촉한 정보를 서술하는 말과 이름이 만들어 졌는데 반하여,
"사랑"이란 말을 누군가가 먼저 만들어 놓고는 여기(눈물)에도, 저기(슬픔)에도, 거기(한숨)에도, 딴 것(기쁨)에도 붙이다 보니, 상대가 여럿이 되었을 뿐, 그 어느 것도 특정(절대적이)되지 못 하고 있다.
사랑이나 미움때문에 괴로운 사람에게 공짜 치료약이지만....
"사랑", "마음"이라는 말을 내, 이제부터 완전히 버리노라 선언만 하면 그만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