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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어떻게, 무엇에게 애를 태우게 한다"고 ?

나 아닌 내 2020. 8. 28. 21:15

김상배도, 장윤정도 부른 [애가 타]라는 노래가 있다.

"너무나 애가 탄다"는 하소연도 있고,

"애 태우지 말라", "애 그만 태우라"는 원망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절절히 탄다고 하소연 하는 "애"가 도대체 무언가?

설마 어린 아이를 무등 태우거나, 자동차에 태운다고 "애 태운다" 하는 건 아닐텐데....

그리고 그 "애"라는 것도 모르겠지만, 탄다느니 태운다느니 하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부디, "애가 애지...", "애 타는 게 애 타는거지...", "애 태우는게 애 태우는거지..." 하시지는 마시옵기를...

눈 으로 볼 수도, 귀로 들을 수도, 몸으로 접촉할 수도 없는 무언가를 애라고 하는 것 같은데 과연 그게 뭘까?

필자 나름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사람의 두뇌 속 어떤 정보(識=기억, 상상)에서 연상(聯想)이 하나 생기고, 그 것에 상대적인 평판(意語), 즉 마음이 부가되어 의식(意識)이 되고, 그 것을 바라고(望), 실현하려는 욕심(意慾), 충동(意志)이 파생하여 에너지(意氣)가 형성되었는데,

막상 실행을 향해 발산할 수가 없어서 내부에 축적되거나, 내부로 범람(?)하거나, 비정상적인 통로로 발산되는 수가 있다.

 

바로, 어떤 충동적 의기(意氣)를 "애"라 하고 그걸 정상적으로 발산함을 "애 쓴다" 하고, 그게 비정상적으로 소모됨을

"애가 탄다", "애 태운다"고 한다고.

 

예컨대, 누군가와 만나는 상상이 떠 오를 때 "꼭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형성되었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그 뜨거운 열기를 발산할 길이 없으면 "폭음하고 넋두리" 하는 식으로 그 의기를 소모시키는 수가 있다. (애가 탄다, 애를 태운다)

또, 누군가의 기억이 떠 오를 때 "만나서 복수하고 싶다"는 열망이 형성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애가 무언지, 애 탄다(태운다)가 무언지를 대충 정리해 놓고, 이제부터 위 제목에 대답해 보자.

 

1. 무엇이 이 사람의 애를 태울까?

   가, 기억이나 상상의 근거인 실존하는(했거나, 할) 사람이 그리 하는가?

       그렇다면 내 또한 멀리 있는 남에게 애를 태우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니.... 

   나, 두뇌 속의 기억이나 상상이 그리 하는가, 그래서 (내가)잊고싶다고 하는가?

       내가 그걸 모를 때는 있는 줄도 모르고, 그걸 알고 있다가도 딴 일에 주의를 돌리면 그건 어디로?

   다, 결론은 내 하기 나름이다.

       그런 마음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내 자신을 깨닫지 못 하고, 그 마음을 내 라고 착각, 혼동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2. 내가 어떻게 이 사람의 애를 태울까?

   가, 내 스스로 알고 애 태우는 일은 없다.

   나. 마음이 하려는 그대로를 내 스스로 하려는 것 이라 착각에 빠져서 애가 타게 한다.

 

3. 무엇에게, 무엇의 애를 태우는가?

   바로 자기에게, 자기의 생체 애너지를 태운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렇게라도 애를 태우지 아니하면 엉뚱하게 폭발하여 부작용이 더 크게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는 애 태움이 결코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사기(邪氣=나쁜 에너지)가 발생하지 아니함만은 결코 못 하다.

 

모든 사기(邪氣)는 필자가 주장하는 삼불가심(3不可心 =不可望, 不可能, 不可當)에서 파생된다.

고로, 그 뿌리를 뽑으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만, 속병에 외상약 바르기 같은 방법으로는 더 악화된다.

제대로 이해하면 "애 탈(태울) 일" 하라고 아무리 꼬셔도 할 사람이 없을터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