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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苦惱)를 탐구해 본다- 그 4, 해소책(解消策)

나 아닌 내 2020. 11. 21. 03:00

고뇌 해소책,

내(정신) 스스로 현명해 지기 뿐 이다.

그 전에, 내(정신) 스스로 우매하다고 알아차리는 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 보다 먼저 "우매(愚昧)", "현명(賢明)"이라는 중국식 단어의 뜻(자기 두뇌 속)부터 알거나 정립해야 한다.

 

사람마다 그 두뇌 속에, 욋적인 인생 운전을 담당하는 (이름하여) 정신기관이 하나씩 있다.

그 정신이 할 수 있는 (하나의) 능력을 두 가지 측면에서 구별해서 보자면 선천적, 후천적 능력의 둘이 있다.

 

1. 선천적 능력은 잉태 당시부터 그 내면에 저장되어 있는 것 으로서 무한하다.(한정이 없다는 뜻이지, 무제한으로 많다는 뜻이 아니다) 

 

2. 후천적 능력은 출생 이후에 제 스스로 계발하여 사용하는 능력으로서 한정적이다.

비유하자면, 위의 1은 숫자를 만들어서 쓰는 능력을 "얼마까지 만들어서 쓸 수 있느냐", 그 가능성에 제한이 없다는 뜻 이고,

위의 2는 그 순간에 당장 만들어서 쓸 수 있는 숫자까지로 한정된 능력이다.

 

전자(선천적 능력)는, 기존에 경험하지 않은 그 어떤 문제도 만들고, 풀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인 반면에,   

후자(후천적 능력)는, 기존에 두뇌 속에 의식화 되어 있는 범위에 국한하여 문제를 만들기도, 풀기도 하는 능력이다. 

전자를 무한의 지혜(智慧), 후자를 한정된 지식(知識)이라 칭하기도 한다.

 

예컨대, 무한의 지혜를 100 이라고 가정한다면, 유한의 지식은 그 스스로 계발하여 사용하기 까지 "0 에서 100 까지"의

어딘가가 된다는 뜻 이다.

내 어찌 짐작이나 가능하리오만 [붓다]나 [예수], [노자], [장자], [이율곡]의 경우 거의 100에 가까운 지혜를 발휘하지 않았나 싶고, 내 같은 경우 10 이나 발휘했을까...하기조차 거북하다만....

 

현명(賢明), 어질다(賢)와 밝다(明)의 복합으로 형성된 단어이다.

 

현(賢)을,  정신이 제대로 차려서 아는 능력과 생명을 존중하는 자비가 충만하다는 뜻으로 지혜로우면 자비롭고, 자비로우면 지혜롭다는 냇적인 등불이라 한다면, 

명(明)은, 그와 같은 현(賢)한 정신 앞에 등장하는 대상 세계가 환히 밝다(明)는 뜻으로 지혜로우면 아는 것에 어둠이 덜 하고 밝다는 뜻 이다. (탐욕에 눈이 멀어, 단견에 눈이 멀어, 어리석음에 눈이 어두워 등등이 그런 비유이다) 

 

우매(愚昧), 어리석음(愚)과 새벽(昧)의 복합으로 형성된 단어이다.

 

어리석음은 자신에 관한, 대상에 관한 두 가지 어리석음을 포함한다.

자각없음, 착각모름, 본분무지가 자신에 관한 어리석음이고, 대상을 제대로 모르고 혼동에 빠짐 등등이 대상에 관한 어리석음이다.  

어리석음이라는 희미한 불빛 앞에 등장하는 대상이 실상 그대로를 밝혀 드러내겠는가, 희뿌연 새벽처럼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매에서 왜 "새벽(昧)"이란 말이 들어 있을까?

아무리 어리석어도 정신이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한 어느 정도의 광명은 있으므로 완전한 어둠(暗黑)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라 본다.

정신 스스로 하기에 따라서, 새벽에서 더 물러서서 암흑으로 더 가까워지고, 더 나아 가서 대낮처럼 더 밝아진다는 뜻 이기도 하다. 

 

고로 "내, 너무나 우매하다"고 깨달으면 깨달을 수록 자포자기로 절망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밝아지려고(發光, 發明) 노력할 수도 있다.

딴 에는 "똑똑하다, 영리하다"는 자만에 빠져서 우매를 지나서 암흑으로 치닫는 작자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인가...

 

그 다음에,

내, 과연 누구의 무엇인가?

내, 과연 누구의 무엇을 위하여,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이고,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러면 저절로,

"번뇌? 그 따위가 무슨 대단한 문제라고, 그 정체만 제대로 이해하면 이미 저절로 해답이 나오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