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편히 살기"냐, "살기편하게 마음쓰기"냐?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마음편히 살아라"
"마음편히 살고 싶어"라는......
왜 그럴 까?
마음편히 살기가 어렵거나 힘에 겹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마음편히 살지 못 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상한 일이다.
어렵고 힘 겹게 애 써도 되지 않으면 바라지를 말거나 줄여야 할 텐데,
오히려 그럴 수록 더 바라는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사람, 그 정신이 아는 것은 그 순간에 자기 두뇌에 떠 올라 있는 의식(意識)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정신이 -제가 아는 것이 두뇌 속 의식이라는- 그런 줄을 모른다.
특히 그 의식중에 의(意) 부분을, 상대적인 언어, 즉 마음(心)임을 모른다.
예컨대, "갑돌이는 키가 커서 좋아"라고 알지만, "커서(비교), 좋아(평가)"는 사실이 아니라 오직 마음일 뿐인데도,
"키가 커서 좋은 갑돌이"가 실제 그대로의 사실로 존재하는 줄 안다.
"좋아서 친하고 싶은 갑돌이"가 실제 인물 그대로라고 안다.
그 대부분, 특히 중시되는 그 의미(意)부분은 모두가 제 두뇌 속 마음(제7 心意)일 뿐인데도....
두뇌 속의 마음(意), 마음이 연결된 정보(識, 意識))와 두뇌 바깥의 실제 사실은 차원이 전혀 다른데도
그걸 제대로 구별하여 알지 못 하여 혼동에 빠지기 일쑤다.
물론, 혼동에 빠진 줄도 몰라서지만.....
자기 인생을 운전해 가는 정신에게 두 가지 경향성이 있으니,
1. 마음 편하게 살기,
2. 살기 편하게 마음 쓰기의 두 가지이다.
전자(1)는 마음이 -실제로야 어떠하건- 사실상 주체이고, 목적이다.
후자(2)는 사람이 주체이고, 그 삶(生)에의 기여(도움)가 목적이다.
전자에서는 사람의 삶이 마음편하게에 쓰는 수단이나 도구처럼 여겨진다.
후자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삶을 편하게 영위하는데 쓰는 수단이나 도구로 여겨진다.
전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인생행로이고,
후자는 깨달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취하는 길 이다.
단적으로, 목적(마음)을 위하여는 죽음도 불사하느냐(전자의 예가 자살폭탄),
주체의 삶을 위해서는 그 어떤 목적도 폐기할 수 있느냐(후자의 예가 죽인다는 위협에 굴복) 이다.
살기 편하게 마음쓰기,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너무나 단순하고, 수원해서 하기도 쉽다.
마음 편하게 살기는 너무나 캄캄하고 모호하여 실행하기조차 어려운데 그리 되길 바라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