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무엇이) 배신자인가?
"그 토록 믿었던 사람이 배신했다"는 소리들을 더러 듣는다.
그런 소리를 듣고 딴 사람들은 그 뜻을 잘도 아는지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렇다는구먼....이라고 알고서?
내 역시 전에는 그랬었다.
"누구에게 배신당했다"는 원망인지 후회인지, 탄식인지 모르지만...
그런데 "그토록 믿었던 사람"이라는 말의 뜻에 전혀 상반되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주체로서, 누군가를 그토록 믿었던 자 자신(줄여서 "그를 믿은" 내 자신)이란 뜻일 수도 있고,
2. 객체로서, 내가 믿었던 그 누군가인 사람(줄여서 "내가 믿은" 그 사람)이란 뜻일 수도 있다고.
위와 같은 믿음의 두 가지 뜻에 따라서 배신, 배신자도 정반대로 달라 진다.
1 (믿은 주체)의 뜻으로는, 타인이 아닌 자기 내부에서의 배신이라 할 수 밖에 없다.
2. (믿은 대상)의 뜻으로는, 자신의 내부가 아닌 타인에 의한 배신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보증 서 주면 아무 탈 없이 하겠다"는 사람의 말을 듣고 보증을 서 주었는데, 나중에 고스란히 물어주는 책임을 지게 되었을 때, 누가 배신자인가?
내가 믿은 [그 사람]이 배신자인가?, 그 사람을 믿은 "나의 마음"이, 그 마음을 믿은 [내 자신]이 배신자인가?
"그가 그리 하여서 내가 믿었다(그가 그리 하지 않았으면 내가 믿지 않았었을 것 이다)"고 보면 그가 배신자로 보인다.
"내가 나의 마음을 섯불리 믿었다(내가 신중했으면 그런 마음, 내지는 그런 소리를 하는 그를 믿지 않았을 것 이다)"고
보면 "나의 마음"(제7 心意)이 내를 속인 것 같고, 내 스스로의 선택(믿음에 맹신)에 속은 것 같다.
단적으로 "모든 배신은 내 탓"이라 할 수도 있고, "모든 배신은 남 탓"이라 할 수도 있다.
선택해서 보기에 따라서는 꼭 그러하다.
자, 그렇다면 선택해서 보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마음(제7 心意) 내키는대로 할까,
자기 인생에의 효율이 높은 쪽으로 선택할까?
사람들, 그 정신은 이런 선택을 거의 하지 않는지, 못 하는지.....이다.
그저 마음대로 맹신, 맹종될 뿐 이다.
그런 결과로 형성된 보편적인 의식이 하나 있으니 "책임은 자기에겐 부담이고 상대에겐 전당표"라는.
그래서 "책임"이란 소리만 나오면 기겁하듯 "나의 책임 아니야, 나에겐 책임 없어, 너 또는 아무개 때문(책임)이야" 하기에 번개처럼 재빠르다.
누구나(보편적으로) 그러 하니, 제대로 책임 소재를 파악하려는 일엔 관심조차 없이 "면책(免責), 부책(賦責"으로 소란스럽다.
책임의 양면성 때문이다.
"지면 괴롭고 해롭다, 지우면 유쾌하고 이롭다"는 양면이다.
그런데 책임의 양면성이 그리 단순할까?
오히려 지고 이행하면 편해지는, 지우고 이행케 하려면 불편해 지는 책임은 적거나 없는가?
아니다, 너무나 많고 흔 하다.
오히려 남에게 책임을 지우려 하지 않고, 내 책임이라고 스스로 짊어지는 선택이 효율이 높은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려 놓고서 전혀 해결책이 없는 경우에는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 돌리는 일이 효율적이다.
해결할 수 없는 책임을 만든 것도, 계속 품고 있는 것도, 그걸 백해무익이라 깨닫지 못 하는 것도 내 책임 아니면 누구의 무엇 때문(책임)인가?
장래를 향하여 효율적인 책임은 따져서 이행받아야 마땅하지만,
역효율이 에상되거나 초래되고 있는 책임은 결코 남(他)에게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향후에의 예방, 개선을 위한 반성등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로 귀착해야 옳다.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믿음도, 배신도 남이 주고, 남 에게서 받는다"는 그 "나의 마음"대로 믿음에 빠지지만,
내가 남에게 믿음을 줄 수 없듯이, 남도 내게 줄 수가 없으니, 배신 또한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
단지, "남이 내게 믿음도 주고, 배신도 준다"는 나의 마음(제7 心意)에 내가 믿어지고 있을 뿐 이다.
내 스스로 믿음(제8 自意)과 내 모르게 믿어 짐(제7 心意)을 구별하기는, 하려고만 하면 너무나 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