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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려서 알기와 저절로 알아 짐의 구별.

나 아닌 내 2020. 12. 23. 13:28

사람의 정신이 아는 것을, 그 원인에 따라서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겠다.

그 스스로 차려서 아는(이를 "알기"라 하자) 것과, 그가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알게 되는(이를

"알아 짐"이라 하자) 것의 둘 이다.

 

밥상에 음식을 차려서 먹듯 "알아-를 위한- 차리기"는 오직, [내] 스스로의 말로만 할 수 있다.

무엇에 관하여 알아야 하는가?

내가 무엇을 모르는가?

내 본분을 수행함에 있어서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내가 안다는 것은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일까?

위와 같은 의문을 두뇌에다 주면, 두뇌는 그와 연관되는 기존의 온갖 정보들을 제시해 놓는다.

이상이 알기 위한 "차리기"지, 그 이외의 무엇도 아니다.   

 

스스로 [알기]를 하려면 먼저 "차려야 할 것"을 알아야 한다.  

"차려야 할 것"이라 함은, "모른다고 아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언가 모른다"고 알아야, 그 중에서 "알기를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알아야, "차려서 알아야 마땅한지"도 알려고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차려서 알기의 시초는 "모르는 것 임을 알기"(無知에의 智)일 수 밖에 없다.

"무지에의 지"를 실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지혜(智慧)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자기의 삶에 필수품이 주변에 있어도 모르면(두뇌 속에 識이 없으면) 못 쓴다. (모른다고도 모르면 찾으려고도 못 한다)

자기의 삶에 위험이 주변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자기의 삶에 중차대한 소용이나 위해가 있는 물건등이 있어도 그 가치 효용을 모르면(두뇌 속에 意가 없으면) 다루지 못 한다. (모른다고도 모르면 실험이나 배움으로 알려고도 못 한다)

 

자기 두뇌에서 어떤 의사가 형성되어 외부로 발현되어 실행될 때 그 원인, 과정, 결과를 모르면 정신이 있으나 없으나다.

그럴 때, "나(我)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알면, 차려서 알려는 시도를 할 수가 있게 된다.

당연히 중도에 수정, 변경, 포기도 가능하게 되므로 실패하거나 후회할 일을 예방하거나 줄일 수 있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아니라도, "모른다는 앎(無知에의 智)"이 얼마나 인생에 보물이 될 수 있는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