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 다루기가 가망(可望)?, 가능(可能)?, 가당(可當)할까?
"(사람이) 사람 때문에 어려움에 처해 있는 문제"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 문제를 풀려면, 바로 그 문제에서 해답을 찾거나, 만드는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그 첫번째 작업이 위의 문장 "(사람이) 사람다루기가 가망, 가능, 가당할까?"의 뜻을 풀이(解)하는 일 이다.
1. "(사람이)"
사람이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사람 스스로가 불각(不覺) 상태에 있어서, 문제를 다루는 주체임을 깨닫지 못 하고 있다는 뜻이다.
단적으로, 그 사람의 정신이, 두뇌 속에 떠 올라 있는 "사람(누군가) 때문에 어려움에 처해 있어서 문제"라고 알지만,
정작 그 자신으로 자각하지 못 하고 있다는 뜻 이다.
그래서 문제의식에 등장하는 "나(我)=주인공"를 자신처럼 착각하고, 문제의식속 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혼동에 빠지기 일쑤라는 뜻 이기도 하다.
2. "사람"
사람이라는 말의 뜻을 차원별로 구별하자면 [사람(실존)], "사람(객관적 정보인 識)", "의미적인 사람(주관적 마음인 意)"의 셋이 전혀 다른 차원이지만, 같은(하나인) 것 처럼 동일시 된다.
따라서 "사람 다루기"라고 할 때의 "사람"이 위의 세 가지중 어느 것을 지칭하는지 구별하면 다루기 어렵지 않지만,
혼동에 빠지면 다루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 적지 않다.
3. "때문"
위의 2를 "원인(因)이나 조건(緣) -합쳐서 인연(因緣)- 처럼 여긴다"는 이 두뇌 속 원인(因)이다.
그 것 "때문"이라고 조건 삼는 원인이 없으면, 대상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고, 그 원인이 없어지면 "때문"도 없어지게 된다.
예컨대, 상대의 어떤 말을 듣고 "거짓말을 해서"라는 때문을 붙이거나, 붙이지 않거나에 따라서 "그 것 때문에"라는
조건이 되기도, 안 되기도 한다.
4. "어려움에 처해 있다"
자기의 그 어떤 상황을 사실 그대로만 보면 "어려움에 처한" 이라는 상황으로 여겨지지 않지만,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라는 마음(難意 = 易意와 상대적)이 연결되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황"으로 여겨진다.
5. "문제"
이상 다섯 가지의 뒤에 "풀어야 할 문제"라 함이 "문제있다"는 마음이고, "문제삼을 실익이 없다" 함이 "문제 없다"는 마음이고, 그런 마음이 전혀 없으면 문제라고 알 수가 없게 된다.
6. 가망(可望).
바라는(望)대로 되지 않아서 문제라면,
되지 않을 일을 바람은 가망이 아니라 옳지 않는 바램(不可望)이다.
가망성 여하를 따지는 단계에 쓰는 말 이다.
7. 가능(可能).
할 수(能) 없어서 문제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싶은 마음(애)을 씀은 옳지 않는 힘 쓰기(不可能) 이다.
가능성 여하를 따지는 단계에 쓰는 말 이다.
8. 가당(可當)
순기능, 순효율 보다 역기능, 부작용, 비효율이라서 문제라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려고 마땅히(當) 해야 한다 함은 옳지 않는 마음(不可當)이다.
가당성 여하를 따지는 단계에 쓰는 말 이다.
이상의 문장 뜻 풀이만으로도 거의 대부분의 문제가 저절로 해소되었으리라.
문제삼을 실익보다는 실해(實害)가 더 컸구나...
해답이 없어서 문제가 아닌 걸 몰랐었구나....
위와 같이 문제에 관한 문장을 해부하듯 풀이해 놓았지만, 그 걸 풀기 위하여 해답을 찾거나 만들어야 할 주체가 무엇인가는 여전히 불명이다.
도대체 사람의 무엇이 문제를 알고 해결, 해소를 담당하는 기관일까?
바로, 내 자신이다.
잠들지 않고 깨어 있을 때의 그 사람 정신기관이다.
내가 문제를 만들 수도, 고칠 수도, 바꿀 수도, 풀어서 해결 또는 해소할 수가 있다.
"문제를 해결, 해소할 수가 있다"는 말에는, 근본이야 그렇지만 부분적으로 안 하거나, 못 하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 숨어 있기도 하다.
즉, 내 자신이 하기 여하에 따라서 그 어떤 문제도 내 자유로 해결, 해소할 수 있기도 하고, 안 하거나 못 할 수도 있다.
그러자면 가장 먼저 [내 자신으로서의 깨달음(自覺)]이 근본적 급선무이다.
그래야 문제 속에 있는 듯 착각과 혼동에 빠지지 않고,
그 어떤 문제와도 초월적인 경지에서 자유자재로 [말]을 구사하여 해답을 찾거나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1. 사람의 몸으로 다른 사람의 문제있는 몸을 다루는 것이 "사람다루기"라고 알기도 하고,
2. 사람의 마음대로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다루는 것이 "사람다루기"라고 알기도 하지만,
3. 사람의 두뇌 속 정신이, 두뇌 속 사람(객관적 정보인 識)에 관한 평판(주관적인 意)을 다루는 것이 "사람다루기"라고 아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예컨대, "키가 너무 커서 꼴 보기싫은 사람이 자꾸 보여서 문제"라 여겨 질 때,
이 몸을 사용하여 상대의 키를 작게 하거나, 상대를 시야에 등장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을 사람다루기라 하기도 하고,
보기싫다, 보이지 않게 하라는 마음대로 상대의 마음을 만들어서 상대의 몸을 그렇게 만들어지게 함을 뜻 하기도 하고,
자기 두뇌속 "키가 커서 보기싫다"는 마음을 "보기싫어 할 필요보다, 보기싫어 말아야 할 필요가 더 크다"고 다루는 것을
사람 다루기라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알고 있기로는 위의 1과 2가 사람다루기의 대부분이다.
너무나 쉽고 수월한 3은 거의 구사하지 못 하고,
사실상 불가망, 불가능, 불가당인 1과 2만의 집착에 빠져 있으니 백해무익일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