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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마음, 좋은 감정, 상쾌한 기분으로 살려면... (그 1)

나 아닌 내 2021. 2. 18. 04:36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뭐라고 할까?

"평온한 마음, 좋은 감정, 상쾌한 기분으로 살고싶은가, 아닌가?"를.

 

거의 모두가 다음과 같이 답하리라.

그야 당연히 그렇게 살고 싶지, 마음대로 안 되어서 탈이지..."라고.

 

"마음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마음은 버리고 되는 마음만 가져야 마땅하지 않는가?"

"그게 마음대로 되어야 그리 하지"

 

"그렇게 마음을 다루어 본 적이 있기나 한가?"

"마음이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데 어떻게 다룬다고....궁시렁, 궁시렁..."

 

"마음이라는 게 무언지 알기는 알고?"

"마음이 마음이지, 마음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궁시렁, 궁시렁...."

 

"그렇게 대답하는 그대는 그 몸에 있는 무엇인 것 같은가?"

"나? 내가 나 이지, 별 희한한 질문도 다 한다...궁시렁, 궁시렁..."

 

그 자신이 무언지 모르고, 제게 알려지는 나(我相, 我意識, 我見, 我慾 등등)를 내 자신이라 착각한다.

마음이라고 알려지면, 그걸 내 자신이라 혼동에 빠진다.

그러니 감정, 기분의 바탕인 마음을 다루어야 할 자가, 그런 감정, 기분의 원천인 마음(心海)에 빠진듯이니

무엇이 주체로 나서서 마음을 다루리오.

 

그래서 "마음을 다루라"는 말을 듣고도, "마음대로 안 된다" 하는 것 이다.

내(그 자신) 자유의지대로 시도해 본 적도 없으면서....

내 자유의지대로 시도해 보고 나면 안 된다는 말은 안 나올텐데....

 

모든 마음은 두뇌 속의 상대적인 언어(의미어, 意語, 통상적으로 "의미"라 하지만 意味는 그런 뜻이 아니다)이고,

그(상대적인) 말은 두뇌 속의 상대화 작업만 하면, 그 작업 내용에 따라서 반드시 생성되는 말 이다.

예컨대, 두 개의 나무를 크기로 비교하면 "어느 것이 크다, 다른 것은 작다"는 말을 반드시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똑 같은 것은 없지만 "둘이 꼭 같다"는 말 또한 "같지 않다", "다르다"는 말과 상대적이니 마찬가지이고..)

 

마음을 알았으면 "마음을 무엇이, 무엇을 수단이나 도구로 하여, 어떤 방법으로 다룰 수 있는가?" 하는 문답을 두뇌 속에서 전개하여 해답을 찾거나 만들어 내야 한다.

 

이 몸의 두뇌 속에 있는 마음을 다룰 주체는, 역시 두뇌 속에 마음 가까이에 있는 오직 내(精神) 하나 뿐이다. 

내가 오직 내 스스로의 말로만 두뇌에다 질문하고 명령하는 형식으로 마음을 다룰 수가 있다.

 

내 이외의 누구도, 이 몸 안의 딴 무엇도 마음을 다룰 수가 없다.

내 스스로의 말 말고는, 내가 마음를 다룰 그 어떤 수단도, 도구도 없다.

내 스스로의 말로 두뇌에게 하는 질문과 명령말고는 마음을 다룰 그 어떤 방법도 없다.

 

여기까지 수긍되게 이해하지 않거나 못 하면 미음 다루는 일은 불가능 하다.

그 일을 할 주체가 주체임을 모르면, 주체로 나설 수가 없고,  

주체로 나선다 해도, 제 스스로의 말이 수단과 도구임을 모르면, 그걸 수단과 도구로 쓸 수가 없고,  

말을 수단과 도구라고 알아도 쓰는 방법인 질문과 명령을 모르면, 실제로 쓸 수가 없으므로.

 

평온한 마음이란, 좋은 감정이란, 상쾌한 기분이란 어떤 상태를 지칭하는 말인지 알아야 실현을 위한 실행에

나설 수가 있을 것 아닌가?

이하 (그 2)에서 게속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