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내, 나를 구별하기가 그리도 어려우실까?
말의 뜻이 사용하는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각 자의 두뇌 속에 있는 말의 뜻 이니....
그래서 말로나 글로 어떤 뜻을 표현하고자 할 때는,
자기 두뇌 속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여 남이 알 수 있겠금 배려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남의 말이나 글을 대하게 되면,
그 말(글)을 낸 사람의 두뇌 속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겠금 노력해야 한다.
그러니 말(글) 내기도, 듣(읽)기도 쉬운 것 같지만, 위와 같이 제대로 알고 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 마음대로 내어 놓고는, 저의 두뇌 속 뜻이니 저야 잘 알겠지만, 남이 모르는 것을 이상타고 아는 사람이 있다.
제 마음대로 듣고 알고는, 저의 두뇌속 뜻이니 저야 그리 알겠지만, 남이 다른 뜻이라 하면 이상타 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내, 나 에다 자기 자신, 내 자신, 나 자신 등등으로 혼용되고 있는 말을 예사로 내고 듣는다.
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 뜻을 다 안다고 알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줄도 모른다.
동어반복(同語反覆), "자기가 자기지", "내가 내지", "나 자신이 나 자신이지" 하는 식에 더도, 덜도 아니기 때문이다.
1. 눈 앞에다 [에이 포] 백지 한 장을 펼쳐 놓으시기를..
그 전체에다 한 사람의 몸을 가득 채워서 그리시기를.(그 전체 그림에 [1 자기(자신)]라 이름을 부여하시라)
2. 또 한장의 백지 한 장에 위의 그림을 옮겨 그려 놓고서,
그 머리 부분에다 두뇌를 그리고, 두뇌 속에 [컴퓨터와 모니터], 사용자를 그리고, 그 사이에다 자판과 마이크를 그리시라.(그 사용자 그림에 [2 내 (자신)]이라 이름을 부여하시라)
3. 또, 한 장의 백지 한장에 위의 그림을 옮겨 그려 놓고서,
내가 자판(마이크)에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하고 물으니 "나는 이 홍길동을 좋아한다"는 대답이 나온다.
(그 대답에다 [3 나 (자신)]이라 이름을 부여하시라)
위의 1은 전체로서의 한 사람으로, 유일 무이한 사람이다.
위의 2는 일부로서의 한 정신으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위의 3은 모래알 처럼 많은 중생이다.
착각은 위의 2(내)가 자각을 못 하고, 1 이라고(내가 인생의 주인이다), 3중의 어느 하나를 내라고 아는 것을 지칭한다.
깨달음(覺)이 딴 것에 섞인 것 처럼(錯)이라는 뜻 이다.
혼동은 위의 3이 있는 상황(기억이나 상상)이 실제 현실인 것 처럼 여겨지는,
내가 그(꿈 같은) 속에 있는 것 처럼 여겨지니,
착각과 혼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혼자서 [티비]를 보는데 형제(자매)간에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갑자기 내가 그 중의 언니(동생)인 것 처럼, 내가 그 다툼 속에 당사자로 있는 것 처럼 여겨진다.
"죽어도 용서 못할" 그 인간(언니? 동생?) 때문에.....하면서.
박진광의 [파도]가 사납게 출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