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마음] -> "내마음"->"내"(착각, 혼동)
그 어떤 마음도 내가 알지 못 하면 그 "어떤(툭정) 마음"이라 할 수가 없다.
그 어떤 "(그)마음"도 진실로는 [내가 아는 마음]이다.
위의 제목에서는
내가(주체),
아는(행위),
마음(대상)이 띄어 쓰기로 구분되어 있다.
사실이 엄연히 그러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 다음에는 "내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내(주체)와 마음(대상)의 사이에 있는 아는(행위)이 사라지고 없다.
뿐만 아니라, 내(주체)와 마음(대상)이 밀착되어 있기도 하다.
실제로 그런 일이 대부분임은 누구나 알리라.
게다가 위의 "내마음"에서 "마음"이 사리지고 "내"만 남았다.
예컨대 내가(주체로서) 알기(행위)로 "담배 피우고 싶은 나"(마음)가 있는데,
"담배피우고싶은내" ->"내(담배ㅐ피우고싶어)"로 되어 있다.
"담배피우고 싶어"라는 마음은 내가 아는 대상이지, 그걸 아는 내 자신일 수가 없다.
그걸 내가 알지 못 할 때는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어찌 내 자신이랴.
그런데도, "그게 내 자신이다", "내다" 하니 착각이, 혼동이 아닐 수 있는가?
모든 집착(속박)과 마음 놓음(해탈)의 분깃점은 오직 하나 내 스스로의 깨달음(自覺) 뿐 이다.
그 어떤 내, 욋적인 것을 불문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비록 촌각이라도 {내 !}라고 외치며 멈추기(止)릏 해 보시라.
그 다음에, 내가 아는 그 어떤 것도 내 자신이 아니라고, 내 자신은 언제나 순수한 홀로라고 깨닫는다.
아는 내(주체)가, 어떻게 알려지는 것(대상, 객체)이 될 수 있는가!.
위 자각을 못 하면, 내가 아는 그 어떤 마음(제7 心意)도, 진정한 [내 마음(제8 自意)]인 것 처럼 "내마음"->"내(마음)"로 착각, 혼동에 빠지게 된다.
그런 착각에서 자각을 하게 되면 그 마음과 따로임을 알게 되어 저절로 해탈케 된다.
내가 아는 누구에 대한 그리움(미움)에서 [내] 홀로임을 자각하면 집착(속박)이 저절로 풀리지만,
아무리 알려주어도 들은척도 하지 않으려는 우매한 사람들이 적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