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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도, 비관도 포용하고 초월할 자유를 [중도]라 하자.

나 아닌 내 2021. 9. 29. 15:42

누구도 "미래(나타나지 않은 결과)"를 미리 알 수 있지만, 실제로는 없는 [미래]는 알 수가 없다.

여기서 "....... " 표시는 그 사람의 두뇌 속 의식적 구조물(하나의 의식)이란 뜻 이고,

[......] 표시는, 사람의 두뇌 바깥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 이라는 뜻 이다.

 

"미래"는 두뇌 속에 존재하지만, [미래]는 그 어디에도, 그 무엇으로도 없다.

"과거"와 [과거]도 마찬가지다.

"현실"과 [현실]은 그렇지 않다.("현실"은 두뇌 속에 있지만, [현실]은 두뇌 외부에 있으므로)

 

사람의 두뇌 속엔 [현실]을 반영하는 "현실"이 있고,

그 것이 금방 [현실]이 아닌, [과거]도 아닌 "과거"가 된다.

"미래"는 체험의 바탕이 된 [현실]과 무관한 상상이지만, 사람에는 매우 필요한 정보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론, 그 "미래(상상)"가 실제 도래할 [현실]과 다른 정도에 따라서 불필요, 유해할 수도 있다.

 

필요 유익하건, 불필요 유해하건 그 판가름은 사후에야 가능하다.

그렇지만, 사후를 기다려서 예측이나 예상을 한다면 그건 시기를 놓지니 취할 바 아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예상을 하면서 살아 간다.

 

그런 예상에는 거의 모두에  믿음이라는 마음(信意, 信心)이 붙는다. 

사람에 따라서 그 예상이 만들어지는 유형에 세 가지가 있다.

되기를 바라는 그대로(好, 樂), 안 되기를 바라는 그대로(惡, 悲), 어떤 마음이 없는(무의미, 無心)

이해를 돕기 위하여 +1 이상 예상을 낙관, -1 이하를 비관, 0점 예상을 무심이라 할 수 있다.

 

예상에 붙은 위의 세 가지가 형성되는 체계에 두 가지가 있다.

1. 두뇌 속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경험과 학습이 바탕이 되어 기계적 조건반사로 "예상되는" 경우(제7心意),

2, 내 자신이 스스로 뚜렷한 자각 상태에서 과학적, 합리적인 근거를 동원하여 목적적으로 [예측하는] 경우(제8 自意). 

"예상되는" 것은 내 스스로의 관여가 없었고, [예측하는] 것 만이 내 스스로의 작품(?)이다.

 

위의 1을 세 가지 마음에 연결하여 낙관형, 비관형, 무심형이라 할 수 있다.

바둑을 두면서 판세를 좋게(나쁘지 않게) 흐를 것 으로 보는 낙관형,

나쁘게(좋지 않게) 흐를 것 으로 보는 비관형,

낙관도, 비관도 없는 무심형이 있듯이......

 

사람들이 더러 "낙관적으로 살아라", "비관하지 말라", "무심하게 보라" 이러는 등등의 소리를 내고 듣고 하지만,

그 뜻을 제대로 모르면 뜻이 없는(말 같쟎은) 헛 소리에 불과하다.

낙관이, 비관이, 무심이 무엇(어떤 뜻으로 쓰는 용어)인지 모르면서 어찌 그걸 하고, 안 하고를 할 수 있다고.....

그런 상태에서 어느 유형이 좋느니, 나쁘느니 하다니 그 또한 가소롭지도 않을 일이지...   

 

낙관도, 비관도, 무심도 그 사람의 두뇌 속 의식계의 한 낱 의식과 연결되어 있음에 더도, 덜도 아니다.

단지 그 낙관과 비관, 무심이 공존할 수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된다.

 

모순대당 관계의 어느 일방의 관점에서 보면,

공존이 불가능 하다.(낙관이면서 비관일 수는 없다)

다른 것을 포용할 수도 없고, 그(낙관이나 비관) 것을 초월할 수도 없다.

 

떨어 져 있는 중도(정신)의 자리에서 보면,

첫째, 그 세 가지 모두를 포용할 수가 있다. 

낙관도, 비관도, 무심도 모두 사람의 정신인 내가 다루기 가능한 대상일 뿐이니까. 

 

둘째, 그 세 가지 전부나 일부를 초월할 수가 있다.

그런 마음(낙관, 비관, 무심)이야 있거나 말거나, 내 스스로 주도하여 고침, 변경, 펴기, 새로 만들기를

완전한 자유로 할 수가 있으니까.

 

갑, 그대의 두뇌에선 낙관되고 있구먼...

을, 그대의 두뇌에선 비관되고 있구먼...

병, 그대의 두뇌에선 무심한 상태이구먼...

나름대로 그럴만 한 이유가 있겠지.(전적으로 포용)

 

내가 갑, 을, 병을 모두 무시하건,

그 중의 어느 하나만 선텍하건,

그 것들을 참고하고 내 스스로 과학적, 합리적 근거를 동원하여 새로운 마음을 만들건 전적으로 자유이지.(완전한 초월)

 

여기서의 중도(中道)는 중간(中間), 중도(中途)라는 뜻이 전혀 아니다.

어디로나, 어디에나 통하는 것이 도(道)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