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만 바꾸면 마음도 바뀌게 마련.
사실적인 크기, 수량, 무게등을 비교하여 생긴 "크다", "많다", "무겁다"는 마음(意)은
그 비교의 상대를 크기, 수량, 무게등이 다른 것 으로 바꾸면 저절로 달라지게 된다.
그렇게 바구지 않고는 달라 질 수가 없다.
예컨대, 월급 300만원을 원하는 액수 600만원에 비교하여 (수량이) 적다는 마음(義)은
원하는 액수를 300만원, 200만원으로 바꾸면 "적지 않다", "많다"는 마음(意)으로 바뀌듯이.
그렇게 하지 않고 무조건 "적지 않다고 보자", "많다고 보자"고 시키고 애 쓴들 불가능 하다.
가치를 평가하여 생긴 "좋다", "옳다", "마땅하다", "이롭다", "착하다", "의롭다" 등등의 마음(意)은,
그런 평가의 일반적이거나 개별적인 기준을 바꾸면 "좋지 않다", "나쁘다" 등으로 바뀌게 마련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무조건 "좋게 보라", "옳다고 보자" 등등 아무리 애써도 불가능 한 일이다.
판단에도 기준이 있고, 선택에는 상대가 둘 이상이 있고, 결정에는 대안이 둘 이상이 있어야 하고,
그런 마음(意)이 성립되어 있다는 것은 둘 이상의 대상이 상대적으로 있다는 증거이다.
단지 사람이 그 둘 이상의 대상을 정확히 알고 마음을 다루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는 반면에,
두뇌 속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상대화 작업으로 생기는 마음이 대부분이라서 그 자신도 모르는 수가
더 흔하다.
그럴 때, 마음의 성립원인(상대적인 두 가지)을 알려면 두뇌를 상대로 [소크라테스]의 소파술을
응용한 문답이 효율적일 수 있다.
왜(무엇에 비하여) 큰데?
왜(누구의 무엇에) 소중한데?
왜(어떤 법률에) 적법한데?
왜(어떤 도덕률에) 마땅한데?
왜(누구위 무엇에) 이로운데?
왜(보편적인 정의 개념) 의로운데? 등등......물음을 궁극적 결론(옥동자)에 도달시 까지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