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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대로]의 두 반영-천국(꿈)과 지옥(현실).

나 아닌 내 2022. 1. 18. 14:49

사람은 누구나 [지금 그대로] 살고 있다.

 

그 누구도,

지금이 아닌 한 순간도,

그대로가 아닌 다르게는 추호도 살 수가 없다.

 

여기서의 [지금(至今)]은 짧은 뜻 으로는 찰나보다 짧지만,

긴 뜻으로는 영원 무한이다.

시(時)라는 절대 개념으로 보면 여러 개의 시(時)와 그 사이(間)라는 "시간"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이라고 알고 있는 시점(時點)이란 뜻이 아니다.

 

그대로는, 존재하는 그대로의 전체라는 뜻 이다.

사람이 알고 있는 "이대로"니, "저대로"니, "그대로"니 하고 칭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반드시 확실히 언급해 두어야 할 것은 

[지급 그대로]는 고정 불변이 아니라, 찰나의 멈춤도 없는 항상 변화(常變라는 뜻 이다.

이걸 몰라서 "지금 그대로 변치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찰나에도 변한다"고 하지만,

[지금 그대로]라는 뜻과 전혀 다르지 않는 뜻 이다.  

 

사람은 누구도 위와 같은 뜻인 [지금 그대로]의 일부로 살아 간다.

그런데, [지금 그대로]에 같은 듯 다른 두 차원의 존재계가 있으니 실재계와 의식계이다.

두뇌 바깥의 [지금 그대로]와 두뇌 속의 [지금 그대로]가 동시에 각각 따로 존재하고 있다.

 

몸으로 살아 가는 [지금 그대로]의 차원을 실재계(實在界)라 하고, 

정신으로 알고 있는 [지금 그대로]의 차원을 의식계(義識界)라 하고, 이하 "지금 그대로"라 표기한다.

 

1. 실재계 중에서 한 사람의 감각기관과 접촉되고 있는 범위를 [현실(현실)], 그 이외의 것을 [비현실]이라 하고,

2. 의식계중에서 그 사람의 정신 앞에 등장해 있는 범위를 "현현(現顯)의식", 그 이외의 것을 "잠재(潛在)의식" 이라 하자.

 

현현의식이라도 위 1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을 "현실의식", 기존의 의식이 떠 오른 것은 "과거의식" 또는 예상의식, 예측의식, 그 밖의 "상상의식"이라고 구별해서 알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현실의식" 내지는 [현실]과의 혼동에 빠지게 된다.

 

눈 앞에 있는 홍길동을 보고 있으면 그 것이 [현실]이고, 그 보이는 그대로가 "현실의식"이고, 이전에 보았던 기억과 의미가 떠  오르면 "과거의식", "저 사람과 결혼하면(識) 행복하겠다(意)"는 의식이 떠 오르면 "예상의식"인데, 그 것들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 하면 섞여서 눈 앞에 있는 사람을 그런(현실의식, 과거의식, 예상의식이 섞인) 사람인 것 처럼 알게 된다.(혼동)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의 정신이 아는 것은 그 순간에 두뇌 속에 떠 올라 있는 현현의식 뿐 이다.

"현(現 :지금 현재라는 뜻) 현(顯 : 두뇌 상층부에 등장해 있다는 뜻) 의식" 말고는 추호도 모른다.

 

어쨌거나 [실재계]는 두뇌 속에 들어 갈 수가 없고, "의식계"는 두뇌 바깥으로 나올 수가 없다.

눈 앞에 있는 사람(실재)이 어찌 두뇌 속에 들어 가며, 두뇌 속에 있는 사람(기억, 상상)이 어찌 두뇌 

바깥에 실재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사람의 정신이 우매하면

1, 저 자신이 어디에 있는 무엇(두뇌 속에 있는 정신)인지를 모른다.

2. 두뇌 속에 의식계라는 것이 있다는 것 조차 모른다.

3. 의식계에 떠 올라 있는 "현현의식"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자신이라 착각에, 의식적 상황을 현실인 것 처럼 

혼동에 빠지기 일쑤다.

 

1. [지금 그대로]인 자기도, 자신도, 실재계도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2. 그에 관하여 "현현의식 그대로"인 자기, 자신, 의식계"를 알 뿐이면서,

2로 아는 것이 1을 아는 것 으로 착각, 오인, 혼동에 빠져 있는 줄을 모른다.

 

"천국"과 "지옥"은 상대적인 언어, 즉 사람의 두뇌 속 마음(意)일 뿐 이다.

천국은, 천국 아님이나 지옥과 상대적인,

지옥은, 지옥 아님이나 천국과 상대적인 언어, 즉 마음이다.

 

두뇌 속의 어떤 정보(기억, 상상인 識)에다 "천국(意)"을 붙이게 되면, 다른 정보(識)에는 천국 아님(意)을,

어떤 정보(識)에다 "지옥(意)"을 붙이게 되면, 다른 정보(識)에는 지옥 아님(意)을  붙이게 되고,

위의 천국도, 지옥도 붙지 않은 정보(識)에는 천국도, 지옥도 아님(意)이 붙거나, 아무 마음도 붙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천국을, 지옥을 실제로 경험하고 알아서 혹은 천국을 원하고, 혹은 지옥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다.

남의 이야기나 책을 통하여 천국과 지옥에 관한 묘사와 평가를 알고서,

1. 실제로 그런 천국과 지옥이 있다(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이 있고,

2. 두뇌 속에 의식화 하기 나름이라고아는 사람도 있고,

3. 아예 전혀 없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2에 속하고, 이 글도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작성한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의식을 품고 살고 있으니 이왕이면 천국에 살고,

지옥에 살지 말자는 뜻 에서다.

 

누구나 살고 있는 [지금 그대로]의 실재계(두뇌 바깥)에는 천국이니, 지옥이니 할 것이 추호도 없다.

그렇지만, 사람의 두뇌 속 의식계에는 의식적인 천국도, 지옥도 얼마던지 있을 수 있다.

그런 두뇌속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의식을 통하여 두뇌 바깥 세상을 투사해서 보면,

보는 그대로의 천국과 지옥이 투영되어 알려 진다.

 

요약하자면,

내 두뇌 속에서 [지금 이대로]와 "달라야(識) 천국(意)"이라는 불만 의식이, 바로 천국 아님 내지는 지옥의 맛(意味)을 선사하는 씨앗이다. 

반대로 [지금 이대로]와 "다르면(識)지옥(意)"이라는 만족 의식이, 바로 지옥 아님 내지는 천국의 맛(意味)을 선사하는 

씨앗이기도 하다.

 

사람이 제가 원하는대로 두뇌 바깥의 상황을 변화케 할 수는 없지만,

두뇌 속의 마음은 소위 마음먹기 나름이므로 제 스스로 하려고만 하면 못 다스릴 마음이 없고,

제가 하기싫다, 못 한다고 하는 한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은 없다.

 

세상을 천국으로 보고 기쁘게 사는 것도 각본 만들기 나름이고,

지옥으로 보고 괴롭고, 성내고 사는 것도 각본 만들기 나름이다. 

어차피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이, 주인공을 만들어서 제작,감독, 연출, 주연하는 연극과 같으니....  

 

지금 당장에 천국 또는 지옥 맛(意味)을 알려면 아주 간단한 [힌트] 하나,

 

이루어 질 수 없는 소원(상상)을 만들어 놓고 그래야 천국이지/이루어지기 까진 지옥이지... (천국 꿈의 댓가가 지옥맛)

지금 이대로가 천국이지/하나만 빠지거나 달라져도 지옥이지.....(지옥 꿈의 댓가가 천국맛)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