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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悟)과 닦음(修), 돈오점수(頓悟漸修)의 해석.

나 아닌 내 2022. 2. 4. 11:14

중국 송나라 당시 불가(佛家)의 선문(禪門)에서 돈오론과 점수론이란 것이 크게 대립한 적이 있다.

지금은 어떤 결론으로 종결되었는지 모르지만....

 

지금 필자 나름으로 그 글자대로의 뜻을 풀이 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돈오 : 사람의 두뇌 속 정신기관이 "단번에 스스로(自)로서 깨달음"을 돈오라 하고,

점수 : 사람의 두뇌 속 정신기관이 "점점 수행을 거쳐서 혼동과 착각(錯覺)을 닦아서 버림"을 점수라 한다고.

 

두 가지 주장에는 공통된 전제가 있으니 그게 바로 착각(錯覺)이라는 것 이다.

"내(自) 아닌(非) 것을, 내(自)라고 아는 것"이 착각이다.

 

거울에 비친 반영, 인화지에 실린 사진, 두뇌 속에 떠 오른 기억이나 상상 속 얼굴을 보는 자가,

제 스스로를 깨닫지 못(不覺) 하고, 제게 보이는 그 것을 내(自)라고 아는 것이 착각이다.

 

아는 내(自)가 잠 들지 않고 깨어 나 있기는 한데,

제(아는 주체)가, 제게 알려지는 것(객체)을, 제 자신인 줄 아는 기이한 현상을 착각이라 한다. 

 

또, 두뇌 속에 있는 저(自)를 깨닫지 못 하고, 두뇌 속에 떠 올라 있는 의식(意識)을 안다는 것을 모르고,

실제로 있었거나, 있거나, 있을 것 이라고 상상된 의식을 현실인 것 처럼 아는 것을 혼동이라고 한다.

 

착각과 혼동은 언제나 함께 일어 난다.

착각이 있어야, 착각 속 주인공의 상황이 현실처럼 혼동되고,

두뇌 속 의식적 상황이 현실처럼 혼동되어야 거기에 등장하는 '나'라는 주인공이 [내] 처럼 착각이 발생한다.  

 

어쨌거나,  그런 착각이 발생하는 원인을 먼저 밝히면 착각을 예방 내지는 벗어 나기가 훨씬 쉬울텐데,

그게 착각이란 것 임을 안 사람조차 지금까지 너무나 매우 드물었으니.....

 

"스스로(自)는, 스스로(自)를 알 수가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논리와 실증방법을 몰라서다.

그래서 "스스로(自), 스스로(自)를 알려고 찾는 구도 여행"에 얼마나 많은 헛수고를 하였던가?

찾는 제가, 어디의 무엇을 찾고 만날 수 있겠는가...(이미 저(自)이거늘, 어디서 또.....)

 

돈오란, "오(悟) ! " 한 마디로 "알려지는 그 무엇도 아닌 것이 내 자신이구나" 하고 단번에 깨달음이다.

점수란, 예컨대 반영, 사진, 기억이나 상상속 모습등 "알려진 이 것들 모두가, 그 것을 아는 내가 아니다"라고 부인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이젠 남은 "유일한 것이 그 모든 것을 아는 내 자신이구나"하는 깨달음에 이름이다.

 

비유하자면, 빈 방에 컴퓨터 모니터를 설치해 놓고, 그 표면에 떠 오르는 기억과 상상 속의 자기라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 저렇게 온갖 여러 모습이 아닌 "진정한 내 모습이 무얼까?"를 찾아서, 만나서 알려고 헤매는 사람이

구도 여행자(정신)라면, 찾는 "오(悟) ! 내가 이미 내 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돈오이고,

"이 것이 나", 또는 "나는 이 것 이다"하고 알고 있던 것 일체를, "그 모든 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난 다음에 이르러,  "오(悟) !, 그 모두를 아는 내가 진정한 내 이구나" 하고 깨달음이 점수이다.

 

연령대별로 각각 다른 50장의 자기 모습(사진)을 앞에 놓고,

1. 이 것이 내 이고, 이 것도 내 이고, 이 것도 내 자신이고 하는 식으로 50장의 사진을 그런 줄 아는 것이 착각이고,

그 사진 당시의 상황을 지금인 것 처럼 아는 것이 혼동이다. 

2. 이 것은 내가 아니고, 이 것도 내가 아니고 하는 식으로 50장의 사진들 모두를 부인하는 것이 점수이고,

3. 위(2) 과정이 없이, 내 자신을 그 무엇과도 따로라고 아는 것이 돈오이다.

 

제대로 돈오를 하면 점수할 필요가 없지만,

점수로는 그(점수를) 완료에 이르지 못 하면 자각할 수가 없다.  

 

1. 내(自)가 고요히 60년전 기억을 떠 올려서 "누군가를 그리워, 보고싶어, 보지 못 해서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서 안다.

내(自)가 고요히 30년전 기억을 떠 올려서 "누군가가 원망스러워, 미워하면서 어쩌지 못해 괴로운 나"를 보고서 안다.

2. 내(自)가 위와 유사한 "나"들을 떠 올리려 시도해 보니 그 수가 헤일 수 조차 없이 많고도 많다.

3. 그런데, 그 수다한 "나"들을 아는 내(自)는 언제나 변함없이 오직 하나 뿐인 [내] 이거늘......

 

위의 1과 2에서 자각하지 못 하면 착각과 혼동에 빠지게 되고,

위의 3에서 돈오를 하면 점수가 필요 없어지고, 점수를 하다가는 돈오에 이르지 못 하면

소위 "도로 아미타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