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視), 관(觀), 현(見)의 구별.
우리 말로 "본다"는 말과 연결되는 중국 문자에 시(視), 관(觀), 견(見)이 있다.
1. 시선, 시각, 시찰등 주로 두뇌 외부에 있는 사물을 눈으로 본다는 뜻 으로 쓸 때 "視"자를 쓴다.
2. 관심, 관조, 관음등 주로 두뇌 속 의식을 대하여 안다는 뜻 으로 쓸 때 "觀"자를 쓴다.
3. 견학, 견문등 주로 위의 1과 2가 섞인 것을 안다는 뜻 으로 쓸 때 "見"자를 쓴다.
"나타남"이라는 무리말에 해당되는 중국문자에 현(現), 현(顯), 시(示)가 있다.
現 : 주로 시간적으로 지금 있다는 "현재"라는 뜻 으로 쓴다.
시(示) : 주로 공간적으로 視(봄)의 대칭인 보임이란 뜻으로 쓴다.
현(顯) :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나타 남이란 뜻 이다. (소위 마음 속에, 꿈 속에, 지방 위에 등..)
어떤 역사적 유산인 건물을 방문하여 시각(視覺)적으로 보는 것(1)과,
그 기억에 연결된 역사 이야기와 설명자의 의사표현과 자신의 소감등을 회상해 보는 것(2),
그리고 위의 1과 2가 종합된 것을 보고, 듣고, 의사를 형성하여서 보는 것(3)이 각각 다르다.
예컨대, 해인사 팔만 대장경판을 본다(視), 그 역사적 이야기를 기억에서 떠 올려 놓고 본다.(觀),
팔만대장경에 관한 내 나름의 주관적 의사를 형성해 놓고서 본다.(見)
여기서 見이라는 글자의 뜻에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1. 두뇌 욋적인 시각적(視覺的)인 뜻 이다.
2. 두뇌 속 의사의 표현인 뜻 이다.
바로 위의 2의 뜻을 "내면의 의사가 겉으로 나타 남"이라는 뜻으로 하여
우리 말로는 "현"이라고 발음한다.
민법상 "表見代理"라 써 놓고 "표견대리"라고 읽지 않고 "표현대리"라 읽는 이유이다.
그래서 이 블로그에서도 "意見"을 통상적 용어인 "의견"이라 읽지 않고 "의현"이라고 읽기도 했지만...
두뇌 바깥의 실상을 잘 알려면 시(視)를 담당하는 눈을 비롯하여 오관(5官)을 잘 구사하여 접촉해야 하고,
두뇌 속의 정보(기억, 상상인 識)를 잘 알려면 관(觀) 능력을 잘 구사해야 하고,
두뇌 속의 마음(상대적 언어인 意)을 잘 알려면 묵언(默言)수행과 묵어(默語)듣기를 잘 해야 한다.
여기서 묵언, 묵어라 함은,
두뇌 속에 내 스스로(自) 두뇌(의식계)에다 "소리없는 말"을 거는 것을 묵언이라 하고,
두뇌 속에서 내게로 들려 오는 "내면의 소리"를 묵어라 한다.
북언은 누구나 쉽게 가능하지만 구사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묵어는 엄청나게 많이 듣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것이 두뇌에서 내게로 들려 오는 소리인 줄 모르고,
내가 스스로 하는 내 말인 것 처럼 오인한다.
어쩌다가 "더러운 세상 살기 싫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발언이지만, 그 사람의 정신이 스스로 한 말이 아니라, 두뇌 속에서 기계적으로 형성된 묵어의 발현(發見)임을 모른다.
주변 사정을 고려하여 그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억제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시라.(그게 바로 묵어이다)
사람의 거의 모든 마음이 묵어의 형태로 두뇌 속에 숨어(?) 있다.
입으로 나오는 소위 "의견"이라는 것의 거의 전부가 그 묵어의 기계적 표현, 즉 "의현"이다.
그걸 잘 알고 다스리지 못 하면, 그게 내 의사, 내 의견처럼, 내가 그 것에 종속적이 되기 쉽다.
그 것이 "하자거나 말자 !!"고 하면,
결과 여하를 고려치 않고 "망해도, 죽어도 할꺼다, 안 할꺼다" 하는 그 소리에 쩔쩔 매는 일이 드물지 않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