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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두뇌 속의 "적멸보궁(寂滅寶宮)"에 있는 내(自)라면?

나 아닌 내 2022. 2. 20. 14:45

불가에서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셔 놓고 있는 장소"를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그 적멸보궁과 전혀 다른 뜻 이다. 

 

사람의 두뇌 속에 정신계와 의식계가 있다고 나는 짐작한다.

정신계는 오직 내(自)만 있는 곳 이지만, 의식계는 온갖 의식들이 생기고, 머물고, 변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두뇌 바깥의 세계(현상계)와 비슷하다.

 

정신계와 의식계는 어떻게 연결, 차단되는지 내 알지 못 하지만, 서로 오지도 가지도 못 한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내가 의식계로 가서 의식을 변화케 할 수가 없고, 의식이 내게로 와서 내를 즐겁게나 괴롭힐 수도 없다.

단지, 내(自)는 의식을 알고 내 말로 다루기를 하거나 말거나 할 수 있을 뿐 이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사람들의 내(정신)는, 내(정신)와 의식의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 하고 있다.

그 보다 먼저, 내(정신, 自, 主)와 의식(정보, 마음, 他, 客)의 정체조차 거의 모르는 줄도 모른다.

그러면서 "내가 아는 의식"으로, 자신과 대상을 제대로 아는 것인양 착각하고 있다.

 

이 정도에서 두뇌 속 [정신계]를 적멸보궁이라고 칭하려는 이유를 제시코자 한다.

정신계에는 정신과 허공(虛와 空)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으니, 의식계와 두뇌 바깥의 모든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멸(滅)과 같아서 고요하기(寂)가 이를데 없다.

그런 상태의 곳 이니 그 어떤 보배스러운 궁전(寶宮)보다 더할 나위 없는 궁전이랄 수 밖에.

 

자, 그렇다면 말로만이 아니라 두뇌 속에 실제로 그런 궁전이 있다는 근거가 뭐냐고 물으리라.

필자의 약간의 경험을 제시하여, 독자님의 실험에 참고케 하고자 한다.

 

사방이 조용한 어느 날 아침에 창문틈으로 햇살이 드는 침대위에서 눈을 떴다가 부셔서 다시 감았다.

그런데 이마 한 복판에 파란 테두리에 빨간 점이 있는 "인공위성 모형"과 같은 영상이 찬란히 빛나면서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가, 눈을 뜨면 사라졌다가 감으면 다시 떠 올라서 움직이고.......

 

그래서 눈을 감은 채로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그 모양이 정교하기가, 그 색갈이 영롱하기가 상상조차 못 하던 보석과 같고,

그 것이 이마 속 좌하에서 우상으로 서서히 흐르다가 눈을 깜박이면 다시 반복하고....

 

점심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깊숙히 기대 앉아서 눈을 감고 이마 앞에 집중하고 있으니,

작은 빛점이 하나 등장하여 그 것에 집중하니 그게 점점 넓어지면서 나중에는 이마 속 전면을 차지하더라.

그 바탕이 형용할 수 없는 비단결 같이 투명하고 깨끗하기 그지 없더라.

그 것에 계속 집중하다가 잠이 들고 말았는데 아직도 더 진보하지 못 하고 있다만... 

 

반야심경에는 없고(無), 없고라는 말이 많이 반복된다.

바로 위와 같은 경지(정신상태)에서가 그러하다.

색(물질계), 수(감각적 접촉), 상(상상), 행(의지), 식(저장)이라는 오온이 없으니 행, 불행인들....

 

내가 잠 들면, 잠든 내가 있는 줄도 모르니 적물보궁 운운할 일도 없다.

내가 깨어 나 있으면서, 내 있는 곳이 적멸보궁임을 알면 그대로만 누리거나,

건너편(彼岸) 의식계를 영화 관람하듯 알거나, 인터넷 화투 게임처럼 놀이에 빠져 보거나,

긴장을 풀고 내가 의식계에 있는 것인 것 처럼 착각과 혼동에 빠지거나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수양의 정도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지는 내 모르지만,

고승이나 관운장의 고사를 보면 보통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초연한 이야기들을 더러 읽었다.

"내 있는 곳은 적멸보궁이다", "내게 알려지는 것은 모두가 내와 무관하기 때문에 내가 마음먹기 나름이다"

하는 말을 진정으로 알고 할 수 있는 경지라면, 충분히 그럴 수가 있으리라.

 

의식계에 "몸의 어딘가에 문제가 발생해 있다는 신호(통증)가 있다"고 아는 것과,

"(내) 장기 어디에 문제가 발생해 있어서 걱정이다"라고 아는 것의 차이를 느껴 보기는 어렵지 않으리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