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필요와 소극적 필요.
여기서 "적극적 필요"라 함은, 인생에 반드시 가까이 해야 할 소용이 있다는 뜻 이고,
"소극적 필요"라 함은, 인생에 반드시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소용이 있다는 뜻 이다.
예컨대, 일정한 음식이 전자에 속하고, 배설물이 후자에 속한다.
인생에 "소용(所用)"이라 함은 쓰일 데(所 =안전, 건강, 순탄, 조화)에 쓸(用) 일을 말 한다.
쓰일 데(所)와 무관한 씀(用)은, 정당한 소용이 아니라는 뜻 이기도 하다.
예컨대, 총은 사람의 안전을 수호하는데는 소용이 있지만, 무고한 사람을 살상하는데 씀은
"소용"이 -있는 것 같지만-정당한 [소용]은 없다.
사람이 살아 가는 과정에는 온갖 것을 혹은 가까이 하려고, 혹은 멀리 하려고, 혹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애 쓰고 기 쓰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게 애 쓰고 기 써도 제대로 할 수 없거나, 하고도 바라는대로 되지 않아서 혹은 몸이,
혹은 마음이 불편하다고 불평하는 일이 어디 하나 둘이랴.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렇게 많은 것을,
혹은 왜 가까이 하려거나, 하지 않으려고,
혹은 멀리하거나 멀리하지 않으려고,
그리도 애 쓰고 기 쓰고는 난리(難離=어려움에서 벗어나려) 부르스를 추는지 의문조차 갖는 이 없으니...
소용있는 일은 반드시 하고, 소용없는 일은 반드시 하지 않는다면 시간, 노력, 비용등이 얼마나 절약될텐데..
그걸 하지 않거나 못 하니 시간, 노력, 비용의 낭비는 물론이고 부작용, 역효과로 환난을 자초하면서.....
그러니 [정당한 소용]이라는 개념의 올바른 정립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가 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인생에 [반드시] 쓰일 데(所)를 안전, 건강, 순탄, 조화의 네 가지에만 국한하고, 그 이외는 위의 네 가지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평범한" 쓰일 데로 삼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인생 운전이 원활할까, 수난과 역경에 처할까?
어떤 사람의 고민을 상담한다고 가정하자.
내가 한다면, [정당한 소용] 부터 확실히 이해하여 수긍하게 도울 것 이다.
상대의 두뇌 속에 [정당한 소용]이 정립되어 있지 않고는 상담의 효율은 커녕 시작조차 어려우리니...
누군가가 혹은 그리워서, 혹은 얄미워서 하루에도 몇번씩 정신이 환상적 여행(?)을 하는 사람이 있다.
옛 시절로 돌아가서 혹은 다정히 속삭이고, 혹은 대판 싸우는 일에 빠지는....
그 사람(그 정신)이, 그런 일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알까?
정당한 소용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잠재적 능력으론 알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아는 이 거의 없더라만....
자기 인생에 소중한 시간, 노력, 자본을 낭비하고 부작용, 역효율을 초래하는데 "소용된다"는 것도
조금만 주의해 보면 알기 어렵지 않지만 전혀 보려는 엄두조차 못 내니.....
지금 내 자신은,
자기 인생의 운전자로서 안전, 건강, 순탄, 조화를 지향하여 운전하고 있는가?
[정당한 소용]은 커녕 백해무익한 "소용"에 빠져서 헤매는 일은 적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