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색은 공이 아니고), 색불이공(색은 공과 다르고).....
색즉시공(色卽是空), 색이 즉 공 이다.
색불이공(色不異空), 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
이런 번역은 누구나 한다.
그렇지만, 색즉시공을 "색은 공이 아니"라고, 색불이공을(색과 공은 다르다"고 -번역이 아닌-
해석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은 누구도 없으리라 감히 추측해 본다.
왜, 내 딴에 전혀 새로운 추론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색과 공을 구별한다는 것은, 그 것이 두 가지로 있다는 전제에서다.
그 이름으로 지칭되는 존재가 이름만 둘 일뿐, 한가지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한.
시각적으로 구별해 보자면 색은 사람들의 눈 으로 지각되는 존재상태이지만, 공은 눈으로는 지각되지
않을 뿐 초전자현미경으로 보일듯 말듯한 것 보다 더 미세한 형태로의 존재라고 본다.
비유하자면, 극히 미세한 밀가루를 -아무 것도 없는 완전한 무(無) 상태인 허(虛)와는 다른- 공(空=미세 물질)이라
한다면, 그 가루들로 형성된 곰 인형을 색(色=물건)이라 할 수 있다.
그걸 보기에 따라서 같은 물질(物質)의 차원으로 보면 "밀가루와 곰 인형이 같다, 다르지 않다"고 보게 되고,
서로 다른 존재 형태(물건)의 차원으로 보면 "가루와 인형은 다르다, 같지 않다"고 보게 된다.
이런 해석이 왜 필요하고 유익한가?
첫째, 2,600년 전의 공(空) 개념을, 그 당시의 관점에서 "깨달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형이상학적 신비(神秘)"의
차원에서 이해 가능한 현대의 과학적 개념으로 파악하므로써 대중적 실용화에 도움이 되겠고,
둘째, 중국 문자 공(空=빔)이 그와 뜻이 전혀 다른 텅빔(虛), 없음(無)으로 "아무 것도 없다"는 허무(虛無)와
동일시 되어 일종의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하던 것을 허(虛=빈 바탕), 공(空=극미의 물질 이전), 무(無=상대적인
언어)의 정확한 구별로 항상에 집착하지도 않고, 무상에 빠지지도 않는데 도움이 되겠고,
셋째, 본원인 공(空)과 그 현현인 색(色)이 본원에서는 같다고, 색(色) 끼리는 본원이 같으면서 현현이 다름을
봄으로써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바탕이 될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는 점 이다.
예컨대, 남(대한)과 북(조선)이 근본에서는 같은 한민족의 나라이니 같다(고로 한 쪽이 일본과 싸우면 당연히..)고,
그러나 현상태로는 사실상의 1인 지배와 민주정이 다르다고 인정하면서 조화할 수 있는 것 처럼.
끝으로 이런 글을 대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집착되면 필자의 의도는 쓰레기 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