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그대로를" ...............(?)
사람(그 정신)은 누구나, 언제나 [내가 아는 그대로]만 안다.
그 이외를 알지 못 하고, 그 이내를 모를 수가 없다.
그 순간에는 오직 그 뿐 이다.
그런데 위의 제목에 "내가 아는 그대로를" 이라고 한 다음에 ...............표시를 해 놓고
그 끝에 물음표(?)를 붙여 놓은 의도가 있다.
"내가 아는 그대로"를 어떻게 보고 다루려는가에 관하여 가급적 많은 질문과 명령을 만들어 보라는 뜻 이다.
먼저, 사람(그 정신)들이 "내가 아는 그대로"를 대(對)하는 자세랄까, 방식이랄까에 상반되는 둘이 있다.
1. 주도적 자세.
내가 스스로 능동적, 적극적, 목적적, 실효적으로 주도하면서 "내가 아는 것"을 만들기, 고치기, 바꾸기, 무시하기등을
하는 자세이다.
2. 종속적 자세.
내가 위와 같은 일을 하지 못 하고 피동적, 수동적, 소극적, 무목적인채로 내게 "알려지는 그대로"를 [내가 아는 그대로]라고 맹신, 맹종하는 자세이다.
이상 두 가지 자세의 결정적 차이는,
"왜 그렇게 알고 있는데?' 라는 물음 하나에 대한 답으로 드러난다.
위 1(정신 주도적 알기) 에서는 "(예컨대) 자기의 삶에 필요하고 유익한 정보와 평가 자료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가능하지만, 위의 2(아는 그대로에 종속적 알기)에서는 "내가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알지"라는 동어반복식의 대답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게 된다.
정신 주도형 알기에서는, 내가(정신이) 두뇌를 상대로 질문과 명령등 형식인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과 유사하다.
옥동자(필요 유익한 결론)를 출산하기 까지 갖 가지 질문을 구사하는 방식이다.
"안 되고, 못 하고, 안 돼는 줄 알면서도 되기를 바라고 하고 싶다"는 마음을,
위 2(종속적 정신) 에서는 어찌 할 수가 없지만,
위 1(자주적 정신) 에서는 "하고 싶어 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데?", "그 결과가 자기 인생에 필요 유익한가?",
"현명하고 책임있는 정신이라면 그런 짓을 용납할까?" 하는 등등의 질문형이나 "자기 인생에 백해 무익하니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당장 포기해야 마땅하다"는 명령형 [말]로 "아는 그대로"를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
이제 위의 제목에서 요구하는 ......자리에 적당한 질문과 명령을 스스로 탐구하여 나열해 보시기를.
쓸데없거나 백해무익한 잡념, 고뇌를 해소하기에 큰 도움이 되리니....
예시 1. "내가 아는 이대로"를 무조건 따를까, 의문을 가질까?
2. 목적에 맞게 고치고 바꿀까, 그냥 둘까? 등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