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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네(내) 하기 나름" 이라는 말의 뜻.

나 아닌 내 2022. 11. 29. 18:38

1. "다, 저(그 사람) 하기 나름이지",

2. "다, 너(나) 하기 나름이지",

3. "다, 내(네) 하기 나름이다",

이런 등등의 소리를 간혹 듣곤 한다.

 

아마도, 무엇이라도 하면 그에 따르는 결과가 발생하게 되는 데,

그걸 하지 않으면 그런 결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사람에게 어떤 결과의 발생 여하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작위

또는 부작위(不作爲)가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여기서 "다"라 함은 모두, 전부라는, 예외가 없다는 뜻 이다.

 

"저"라 함은 "그 사람마다"라는 뜻 이다.

"너(나)"라 함은, 그 사람의 두뇌 속에 형성된 "나 라는 이름의 의식(我意識)"이니.

그 사람의 정신인 내 자신이 "알고 있는 나", 정신에게 "알려져 있는 나"로서,

그걸 품고 있는 저(그 사람 자체)도 아니고, 그걸 아는 내(정신 자신)도 아니다.

 

"하기"라 함은, 위의 1,2,3이 하는 일 일체라는 뜻 이다. 

특히 빠트리지 말아야 할 것이 "하기"에는 "안 하기(不作爲)"도 포함해야 한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이지, 할 수 없는 일은 제외된다.

 

"저"는 그 사람 전체라는 뜻 이니, 

넓은 뜻 으로는 위의 1.2.3이 모두 포함된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좁은 뜻 으로, 위의 2와 3인 하기를 제외한 뜻 으로,

주로 생리적, 본능적인 일 이지만 그 가지 수가 결코 적지 않다.  

심장과 혈관 작동, 신경과 근육관리, 소화와 배설작용, 욋적인 침입에의 대응

등등 위의 2와 3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 이다.

 

"나"는 두뇌 속에 형성된 의식(意識)중의 하나(個)들 이니, 그 형성되어 있는

그대로의 일만을 할 수 있을 뿐 이다.

보통 사람들에게서는 경험과 학습이 그 주류를 이루고, 정신적 수양이 높고

깊은 사람들은 스스로 탐구와 검증을 거쳐서 의식을 다루기(만들기, 고치기,

바꾸기,. 무효화 하기) 때문에, 욋적인 경험과 학습에 대하여 자유롭다.

 

"내"는, 그 사람의 삶을 욋적으로 운전하는 기관(정신)이다.

가. 그 사람을 욋적으로 살게 하기(냇적인 살기는 그 사람의 본능이 한다),

나. 그 사람의 삶을 욋적으로 운전하기.  

다. 위의 가와 나를 실행하기 위하여 두뇌의 감각, 운동, 사고기능을 [말]로

    다루는 일을 한다.

 

이상 한 개인의 하는 일을 행위자(?)별로 세 가지로 구별하여 보았다.

자기(본능)가 하는 일이 본원에 속하고, 나(아의식)와 내(자신)가 하는 

일이 파생된 일 이다.

 

하지만 현실적 으로는 나의 하는 일 또는 내가 하는 일이 자기(생명체 주인)를

압도할 수도 있음을 아는 이 드물다.

 

한 개의 "나"(의식)가 "죽자"는 마음대로 실행하면 자기(그 사람)가 죽는데,

그러면 나머지 모두가 저절로 궤멸되어 사라져 버리니까.  

 

내 자신이 위와 같은 "나"의 망동(妄動을 내 자신의 뜻인양 맹신, 맹종하거나,

내 스스로 "죽는 수 밖에 없다"는 의식을 만들어서 실행할 수도 있고,

"나"의 그런 짓을 통제하여 못 하게 하거나, 내 스스로의 패역무도한 짓을

안 할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사람의 삶에 있어서 그 정신(곧 내 자신)의 기능과 역할이 얼마나

중차대한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비유하자면,

자기라는 사람(본능, 본성, 생리적 능력)은, 순진한 어린이와 같다.

나(아의식)는, 그 아이가 재미있다고 가지고 노는 위험한 장난감과 같은 면도 있다.

내(정신)는, 그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하여 성장케 하는 부모, 스승과 같다.

 

사람들의 [내], 과연 그런 본분을 짐작이나 하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