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信, 不信, 反信)이라는 마음(意)의 이해득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 사람의 정신이([내]가) 아는 것은 불완전 할 수 밖에 없다.
두뇌 바깥에 있는 세상을 살아 가려면,
가. 두뇌 바깥에 [있는 그대로](事實)를 정확히 알고,
나. 그 것(사실)이 삶에 어떤 영향, 효과가 있는 지를 올바르게 비교, 평가, 판단해야 올바른
선택과 결정을 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그 어떤 방법으로도 두뇌 바깥의 존재상태를 직접 대(對)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간접적으로 감각기관을 매개로 하여 획득되는 정보가 두뇌 속에 입력(識)되어야만,
그 정보대로만 알 수가 있는데 불과하다.
자기 신체와 주변 상황에 한정해서라도
과연 양적으로 어느 범위나 감각적 접촉이 가능할까?
과연 질적으로 어느 정도나 정확한 정보가 획득될까?
과연 가치적으로 어느 정도나 올바른 평가와 판단이 가능할까?
필자는 감히 대답할 엄두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부족, 부정확, 부적정 하다고 본다.
자, 그렇다면 그 정보와 판단이 부족, 부정확, 부적정함을 알건 모르건 사람들은
그 순간에 자신(정신, 내)이 아는 것 말고는 의지할 것이 없으니
저절로 그 것에 신뢰케 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는,
[내]가 스스로(自) 주도적(主)으로 "내가 아는 것에만 믿고 의지한다(信賴)"고 명시적으로 알고
믿는 것을 [믿음](제8自意)이라 표기하고,
그 순간에, [내]게 "알려지는 그대로(意識)"를 실제 그대로의 [사실]이라고, 또는 실제 그대로의
[사실]과 같다고, 실제 그대로의 효용가치가 있다고 알게 되는(여겨지는) 것을 묵시적인
"믿음"(제7 心意)이라고 한다.
위의 [믿음]과 "믿음"의 구별은 다음과 같다.
[믿음]은 내가 스스로 주도하여 만든 것 으로, [내]가 잘 알고 있으므로, 내가 스스로 고치고, 바꾸고,
버리고 하는데 자유자재가 가능하다.
"믿음"은 내가 주도하여 만든 것이 아니니, 내가 그 내용은 물론이고 그런 믿음이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믿음을 새로 고치거나, 바꾸거나, 버리는 일을 거의 못 한다.
"믿음"의 경우, [내] 자신은 "그 것(의식)을 사실 그대로라고 제대로, 정상적으로 아는 줄 알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확신적 맹신에 빠져서 맹종하게 된다.
소위 배우자에 관한 "의심증(의처, 의부)"의 경우, 그 사람의 정신 자신은,
자기 두뇌 속에 떠 올라있는 의식(상상)을 믿는 줄 모르고, 배우자가 그런 상상과 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알 뿐 이다.(마치 직접 본 것 처럼)
사람에게 믿음은 "필요한 호오(好惡)"이다.
부족한 정보, 부정확한 정보, 부적정한 평가라고 알아도 당장은 그 어떤 조치이건 해야만 할
(하지 않으면 안 됄)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선택과 결정의 경우가 모두 그러 하다.(완전무결한 의식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그래서 매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는 알건 모르건 믿음(信)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믿음의 결과가, 유익한 측면에선 "필요호(必要好)"이다.
믿음에 따른 그 조치의 결과가 삶에 필요하고 유익하다면 "필요하고 좋은 믿음"이라 할만 하다.
믿음의 결과가 유해한 측면에선 "필요오(必要惡)" 이다.
믿음에 따른 그 조치의 결과가 삶에 불필요하고 유해하다면 "불필요하고 나쁜 믿음"이라
할만 하다.
사람(그 정신)들의 문젯거리는 다음과 같은데 있다.
첫째, "믿음"이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모른다.
"믿음이 믿음이지, 믿는게 믿는 거지, 안 믿는 것과 반대가 믿는거지.." 하는 식으로 아는 줄 안다.
그래서 믿음을 스스로 자유자재로 다루지 못 한다.
제(정신) 앞에 등장해 있는 의식을
- 사실과 같다고 여겨 진다(스스로 [믿음]이 아니다, 이하 모두 같다)
- 사실이라고 알게 된다(스스로 [앎]이 아니다)
- 특히 남의 말, 글, 보도, 평가등이 실제 사실이라고 여겨진다.(글 이라는 근거를 실제라고 혼동)
- 자기 두뇌속 상상이 실제 사실이라고 여겨 진다.(스스로 그리 여김이 아니다)
둘째,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줄도 모르고 착각과 혼동에 빠져 있다.
"맞다", "사실이다", "그렇다", "틀림없다"는 등등의 믿음 소리를 [내]가 하는 말인줄 착각, 혼동에
빠져 있으니 저절로 그런 소리에 맹신, 맹종될 수 밖에 없다.
셋째, 믿음을 목적적, 합리적,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모른다.
스스로 믿음을 다루기는 커녕, 그 믿음에서 벗어나는 일조차 못 한다.
[믿음], 제대로 활용하면 무한한 효용이 있지만,
"믿음", 제대로 다스리지 못 하면 무한한 해악을 피하기 어렵다.
[믿음]과 "믿음'의 구별조차 못 하면 [믿음]은 쓸 수가 없고, "믿음"은 벗어 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