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事實)의 갖 가지 차원 = 말(言, 語, 意, 말), 정보(識), 사실(實), 자기(人).
우리(사람의 정신)가 "사실"이라고 칭하는 것에 갖 가지 차원이 각각 다르게 있다.
그 것들이 각각 다른 차원이니, 각각 다른 차원으로 알아야 하고, 그러면 착오니, 혼동이니
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에, 그걸 정확히 구별하여 알지 못 하면 이 차원이 저 차원인양, 이 차원이 그 차원인양
오인, 오해, 혼동이 발생하기 쉽다.
두뇌 속 상상이, 두뇌 바깥 실제 사실이라고 혼동되는게 그런 예의 하나이다.
말은, 말 이외의 사실이 아니고, 말(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실이다.
사실로서의 말은 소리일 뿐이므로.
예컨대 "코끼리"라는 말은 그 소리로서의 사실일 뿐, 두뇌 바깥에 있는 동물이 아니다.
그 소리가 입으로 나온 언(言)이건, 두뇌 속 정보인 서술어(제6禦識)이건, 의미어
(제7 意識)이건, 두뇌 속 [내 말](제8 自意識)이건, 그 실체는 소리 이외의 그 어떤
사실도 아니다.
"너는 좋은 사람"이라는 남의 소리(言)를 들어도,
"그 녀는 좋은 사람"이라는 내면의 소리(語, 意)를 알아도,
[잘 할 수 있다]는 내 말을 하고, 들어도 그 소리들이, 그 소리 이외의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소리인 사실을, 소리 이외의 사실과 혼동치 말아야 정상이다.
두뇌 속에 기억되어 있거나 상상으로 형성되어 있는 정보(識)는,
두뇌 속에 그렇게 있는 사실 이외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것도 아무리 선명하게 두뇌 상층부에 등장해 있어도 두뇌 밖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두뇌 속 그런 정보(識)인 사실을, 두뇌 바깥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처럼
알지 말아야 정상이다.
사람의 두뇌(그 안팎을 포함)를 포함하는 육체와 그 바깥에 있는 존재계를,
두뇌 외부의 [사실]이라고 표기하자.
그 [사실]은 항상 [있는 그대로 변화하는 흐름]으로 존재한다.
두뇌 속 의식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두뇌속 의식계의 "사실"을, 두뇌 외부의 [사실]인 것 처럼 알지 말아야 정상이고,
두뇌 외부의 [사실]이 두뇌 속 "사실'과 무관하다는 것도 알아야 정상이다.
종합적으로, 그 둘을 혼동하지 말아야 정상이다.
자기라는 사람은 두뇌를 가지고 있다.
그 두뇌를 경계로 하여 그 안에는 의식계에 의식으로 형성된 "사실"이 있고,
그 바깥에는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존재하고 있다.
그 두뇌 속에 정신기관이 있으면서 감각기관을 매개로 하여 두뇌 외부의 [사실]과 접촉하고,
내부의 의식계에 대하여 아는 일을 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혼동이 발생할 수 있는 단초가 발견된다.
두뇌 속 정신이 스스로의 위치(소재)를 잘못 알고 있으면, 그 자신이 눈등 감각기관이라거나 감각기관
가까이(두뇌 외부)에 있는 줄 착각한다.
예컨대, 눈으로 접촉하여 수집된 정보(識)를 두뇌 속에서 대하여 안다는 걸 모르고,
눈 으로, 눈과 함께 있으면서 외부 [사실]을 직접 그대로 보고 아는 줄 알게 된다.
그런 정신적 불각(不自覺), 착각(錯覺) 때문에, 자신이 두뇌 바깥에 있으면서,
두뇌 바깥에 있는(있었던) 것을 아는 것 처럼 오인에 빠져 있다.
그걸 간단히 증명할 수 있으니, "두뇌 바깥에서 전혀 만난 적이 없는 상상이나 과거의 기억이,
지금 이 순간에 어디에 나타나 있어서 내 자신이 그걸 알까?" 하는 문답만 거치면 가능하다.
"그 것이 두뇌 속 의식계에 떠 올라 있고, 그 것을 아는 내 역시 그 의식과 가까운 두뇌 속에
있어야 알 수가 있다"는 대답말고 달리 대답할 수 없으니까.
자기라는 [사람]을, 자기가 살아 가는 일과 관련이 있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면,
한편으로는, 그에 관한 정보와 평가자료를 부족함과 부정확, 오판이 가급적 없도록 두뇌 속에 의식화
하는 수 밖에 없다.
또 한편으로는, 그러고도 자신이 아는 것(두뇌 속 의식)이 완전무결한 정보와 평판이 아니라고
의심하고 보완해야 한다.
그러고도 사실오인 ,오해, 오판, 오선택, 잘못 결정에 걸리지 않기가 극히 어렵다는 것도
명심할 일이 아닐는지.....
"그리 소심해서 어찌 살겠느냐!?" 하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