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정리하기.
여기서 마음(心)이라 함은,
두뇌 속 의식(意識)중의 의(意) 부분에 해당되는 상대적인 언어(좁은 뜻의 마음)와,
그 것이 부가(附加)되어 있는 정보(識)까지를 포함하는 뜻(넓은 뜻의 마음) 이다.
"쓸데없는 마음은 정신을 혼란케 하고 시간과 정력을 낭비케 하니 정리하라"는 말을
듣고도 막상 그 정리작업을 시작조차 하기 어렵고도 어렵다,
왜 그럴까?
1). 마음 정리의 필요성(안 하면 유해성, 하면 유익성)을 정확히 몰라서다.
안 하면 얼마나 해롭고(장애가 되고), 하면 얼마나 이로울지(도움이 되는지) 몰라서다.
2). "마음"(이란 단어의 뜻)의 정체를 몰라서다.
"마음이 마음"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 정신 수준이라면 모르는 마음을 어찌..
3). 누가(자기라는 사람의 무엇이) 정리해야 하는지 몰라서다.(제가 저를 모르니....)
마음 정리를 오직 내 스스로만 할 수 있다고 알아도, 내가 마음인 것 처럼 착각에 빠져있으면...
4). 정리할 마음을 알아내고, 정리하는 방법을 몰라서다.
마음을 알아도, 그 중에 어떤 것이 정리 대상이고, 그걸 가려서 구별해 내는 방법도 모르고,
정리할 방법을 모르면 마음 정리라고 할 수 있는 일을 어찌 알겠는가....
1. 마음정리의 필요성.
누구나의 삶은 변화로 흘러 온현실에서 변화로 흘러 가는 과정 속 [지금(현재)]에만 있다.
언제나 변화하면서 흐르는 [지금, 현재]로만 살 수 밖에는 없다.
과거로 되 돌아 갈 수도 없고, 미래로 미리 갈 수도 없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과거"나 "미래"가 [지금 현재]에는 있을 수 없다고 알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거의 모두가 "과거"나 "미래"가 [지금 현재]에 있을 수 있다는 걸 모른다.
바로 이와 같은 기괴한 일이 사람의 정신을 헷갈리게 만든다(?)
예컨대, 2023.02.06현재에 2022.05.10에 있었던 일도, 2023.12.31에 일어 날 일도 있을 수
없다는 건 -지금 당장은 알건, 모르건 간에- 누구나 알 수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론, 2023.02.06.09:30에 이 사람 두뇌 속에 2022.05.10에 있었던 일(행사)
기억과 2023.12.31.24:00에 있을 송구영신 행사 예상이 떠 올라서 보고 있다.
두뇌 속 일도 엄연히 [지금 현재]의 일이니, [지금 현재]가 아니라 할 수는 없다.
여기서 온갖 혼란이 발생한다.
두뇌 바깥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두뇌 속에는 엄연히 있고,
두뇌 속에는 엄연히 있는 일이 두뇌 바깥에는 있을 수가 전혀 없다는 걸 몰라서다.
그래서 두뇌 속일을 지금 현재 두뇌 바깥의 일인 것 처럼 동일시에 빠져서
야단법석, 난리법석을 펼쳐도 소란키만 하다.
이런 소란을 사후에나마 시정하고 사전에 예방하려면 두뇌 바깥의 [지금 현재]와 상관이 없는
마음(의식)이 두뇌 속 [지금 현재]로 떠 오르는 원인을 밝혀서 시정하고 해소하는 일이
필요하다.
두뇌 속 마음(의식계)을 두뇌 바깥에 맞추기는 가능하고 쉽지만, 두뇌 바깥의 현실계를
두뇌 속 의식계에 맞추기는 가능성이 한정되고, 어렵고 힘들기도 여간 아니다.
그러니, 몸으로 살아가는 현실계 중심으로 의식계를 목적적, 수단적, 도구적으로 활용하여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걸 거꾸로 하고 있으니 야단(野壇)치고 난리(難離) 칠일
아닐 수가 없다.
그 일이 바로 "마음 정리하기"이다.
즉, 두뇌 바깥에서의 연속적 흐름(변화과정)인 [지금 현재]와 무관한 마음(意識)이 떠 올라서
정신이 쓰임(내 자신이 시달림)을 시정및 예방하려는 작업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두뇌 바같의 [지금 현재]와 무관한 마음(意識)이 왜 떠 오를까를 차려서 아는
일 이다.
결론만 말 하자면, 그 의식의 정보(識) 부분에 연결된 마음(意意 이상의 강도)이 미결(未結)로
남아 있어서다.
예컨대, 그 어떤 이성과 만나기(꿈, 상상인 識)에, 이루고 싶은 마음(意慾)이 연결되어 있는 경우이다.
꿈(상상)만 있고, 만나고 싶은 기대조차 없으면 미결이 아니고,
꿈(상상)이 있어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판단이 확고하다면 역시 미결이 아니다.
꿈(상상)이 실현되었거나, 실행중에 있어도 미완일 뿐 미결은 아니다.
미결 상태의 마음이 떠 오르는 것이 어떻게 여겨지느냐는 소위 보기 나름이다.
보는(관점) 그대로 보이기(보여지기) 때문이다.
1. 미결을 알아차려서 실행(실현)하거나, 포기등 완결 조치를 취하라는 내면의 멧세지라고 볼 수 있다.
2. 그 대부분이 실현불능, 실행 불가능, 실행 불가당인 의식인데 그 욕망이 떠 오르면 괴로울 수 밖에 없다.
위의 1(긍정적 관점)로 보면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그만이고, 그러면 그 마음도 저절로 정리된다.
위의 2(부정적 관점)로 보면 그 것에 대하여 불평, 불만으로 저항케 되고 그러면 부작용, 역기능이 발생한다.
바로 위의 2(미결인 마음이 떠 오름을 부정적으로 나쁘게 보는 관점)로 보기 때문에 마음정리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 마음이 다시는 떠 오르지 않게 시정하고, 그걸 교훈삼아서 앞으로 그런 미결의 마음이 남겨지지 않도록
에방조치를 할 수가 있으려면 반드시 그 마음을 정리하여야 한다.
마음정리는,
1). 실용적 가치가 있는 마음은 -썩히기 아까우니- 효율적으로 실용하기로 하고,
2). 실용적 가치가 없으면서 무익 내지는 유해하기만 한 마음은 -그 때문에 속 썩이기 해로우니- 폐기하기로
하는 두 가지 뿐 이다.
여기서는 위의 2)만을 정리 대상으로 삼기로 한다.
정리할 대상은 대상에 포함되는 의식중 마음(意) 부분인가, 정보(識) 부분인가를 검토해 보자.
역으로, 가능성 부터 고찰해 보자.
마음(意)은 무시하고, 그 마음이 연결된 정보(기억이나 상상인 識)만을 떠 오르지 않게 하거나, 아예 없어지게
할 방법이 있는가, 없다.
"그런 방법이 없어서 괴롭다"는 사람이 많지만, 실상은 "그럴 수 없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해야 마땅하다.
결과를 가상하여 비교해 보면 누구나 알 수가 있다.
두뇌 속 정보(기억이나 상상인 識)는 그냥 두고, 그 것에 연결된 마음(意)만을 다루는(고치기, 바꾸기, 버리기)
는 누구나 하려고만 하면 무제한으로 가능하다.
그렇지만 할 줄 몰라서건, 하기 싫어서건 하려고 하지 않으면 전혀 할 수가 없다.
예컨대,
1). "이러 저러한 그 사람(기억인 識)이 떠 오르면(조건인 緣),
2). "보고싶어 미치겠는데(意),(마음인 因))
3). 만날 수가 없어서 괴롭다(결과인 果)
위의 3)(현실적(?) 결과)을 해소하려면 1) 자체를 직접 떠오르지 않게 할 수는 없지만,
2)를 다루어서 간접적으로 1)이 떠 오르지 않게 할 수는 결코 적지 않다.
-되지도 않을 마음(꿈)을 왜 품고 있어, 바보같이....
-실행하지도 못할 마음(욕망)을 품고 있으니 애 타서 속 상하지....
- 그는 그대로 잘 살고 있거나 말거나, 이 사람은 잘 살도록 내가 성심을 다 해야지....
- 백해무익한 마음인 줄 알았으니 무슨 미련을 남기리오....
모든 미련을 둘러 싸고 있던 움막(그리움, 미움, 후회스러움, 한탄스러움, 걱정스러움,
원망스러움, 불안스러움, 미련스러움 등등)을 거두어 내니, 그 속에 있던 환상적인 꿈이
저절로 사라지고 없다.
그 순간부터는 지나 간 꿈과 그 것을 퇴치한 이야기나 할뿐, 꿈 속을 헤매는 괴로움은
일어 날 수가 없다.
마치 새로 생긴듯한 시간, 정력, 노력, 자본들이 엄청나게 많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