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는 나 아니다.
[내(自, 主)]가, 눈 앞에 있는 군대 시절의 사진 영상을 두뇌 속에서 보고 있다.
그 사진 속에 "나를 괴롭히던 김하사"가 있고, "너 이놈 두고 보자 하는 나(他, 客)"
가 함께 있다.
[내]는 "나"를 아는 [내]이고, "나"는 [내]게 알려지는 "나" 이다.
그러니 [내]가 "나"일 수 없고, "나" 또한 [내]일 수가 없다.
그러니 "나"를 [내] 아니라 하고, {내]는 "나" 아니라 해야 올바르다.
그런데도, [내]가 "나"를 보면서 "이게(또는 저게) [내]다" 한다면 명백한 착각이다.
이 착각은 "무엇(自또는 他)으로 말미암아(由)", 즉 자유(自由)일까 타유(他由)일까?
누가, 무엇이 내로 하여금 착각하게 할 수도, 착각 안 하게 할 수가 있을까?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을 향하여 너 때문이야, 남 때문이야 할 수도 있지만,
남이 그럴 수 없다면 -물론 착각인줄 모르니 착각에 빠지지만- 내 탓(自由)이었구나
하고 나중에라도 깨닫는 것이 현명하다.
사진(그 속의 "나")을 보면서, 그 안에 내가 있다고, 그 것이 내 라고 착각인줄 알고
착각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리오.
착각인줄 모르고 제대로 아는 줄 맹신에 빠진 줄도 모르는 사람이 어찌 착각에
빠지지 않고, 빠져서는 스스로 깨어 나리오.
사진 속 "나의 상황"이 [내 상황]인 것 퍼럼 혼동에 빠진 줄 모르고 날뛰는 사람이,
그 혼동에서 어찌 쉽게 벗어 나리오.
여기서 "사진"이라 한 것은, 자기 두뇌 속 의식계에서 떠 올라 있는 기억이나 상상인
"나" 라는 이름이 붙은 의식을 비유적으로 지칭한다.
기억(과거)이나 상상(미도래)만 떠 오르면, 그 것을 지금 [내 처지]라고 착각, 혼동에
빠져서 괴로운 것을 번뇌라 한다.
모든 번뇌는 삶에 미치는 쓰임새로 보자면 백해무익한 쓰레기, 독초와 같다.
그걸 퇴치할 100% 자유와 책임이 있으면서 그런 줄 모르는 [내] 자신은 번뇌보다 더 고약한
역적이고, 악마라고 할만 하다.
물론 제대로 알지 못 하여 착각과 혼동에 빠진, 그래서 역적이고 악마처럼인,
어찌 보면 가련한 [내] 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