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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램(望)을 자유 자재로.

나 아닌 내 2023. 3. 6. 14:27

희망을 가져라,

유망한 청년이다.

실망하지 마라,

절망스럽다, 이런 등등의 소리를 간혹 듣는다.

 

공통적인 뜻은 배램(望)이 좋다고, 바램이 없거나(無望), 잃거나(失望),

끊어지면(絶望) 좋지 않다, 나쁘다, 싫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가져라 잃지 말라고 하고, 잃거나 끊어졌다고 탄식한다.

 

그러면서도 그 좋다는 바램(희망)을 스스로(自) 적절하게 다루어서

누리지 못 하고  쩔쩔매기 일쑤다.

왜 그럴까?

 

바램(희망)의 정체를 제대로 몰라서다.

"바램"이 하나의 마음(望意)이라는 것을 몰라서다.

안 바램(不望)과 상대적인 언어(意)임을 몰라서다.

 

바램이 두뇌 속 어떤 기억이나 상상인 정보(識)에 부가적 형식으로만 성립되는,

어떤 의식(意識)의 일부임을 안다면, 그 것에 연결된 정보(識)의 정체도 알기 

어렵지 않을텐데, 그걸 모르니 소위 "실망했다"는 말 뜻을 알지 못 할 수 밖에.

 

실망이 뭔데? 하는 물음에 "실망이 실망이지.."하는 대답밖에 못 하지...

예컨대, 두뇌 속에 "갑순이와 결혼하여 사는 나의 모습"을 상상(識)해 놓고, 그 것에다

"가망없다, 안 바란다"는 말과 상대적인 "기대된다, 바란다"는 마음(望意)을 연결해

놓고 있는 것이 소위 희망사항, 희망, 바램(望)이다.

 

그런데 희망을 잃었다니, 두뇌 속 희망이라는 단어가 어디로 갔다고 잃었다 하지? 

그 희망을 연결해 놓고 있던 상상이 "갑돌이와 갑순이 결혼"이라는 현실정보로 

대치되면서 허물어진 것에 불과하다.

 

희망을 잃은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연결되어 있던 가망없는 꿈이 사라진 것 이다.

희망은 온전히 남아서 다른 대상(꿈, 상상)을 기다리고 있을(?) 뿐 이다.

 

사람들이 희망을 잃었다고, 절망스럽디고 한탄하면서 그게 싫다고 몸부림치지만,

희망이라는 마음(意)은, 언제라도 새로운 대상과 연결되게 준비되어 있다.

그렇지 않던가, 실연에 울던 사람이 새로운 연인을 만나서 언제 그랬냐는듯 하는....

 

우리네 두뇌 속에 "바램(희망)"이라는 말(마음)이 만들어 진 이상 그 것을 무시하지만

않으면 언제나 사용할 수가 있다.

 

하나의 꿈(상상)이 무너졌다고, 가능하고 실효성 높은 새로운 꿈 하나 만들기가 어려울

것 무엇이 있겠는가...

문제는 가능하고 실효성 높은 꿈을 만들어서 바래지 않고, 불가능 하고 가당챦은 헛꿈에다

희망을 걸(리)기 때문에 실망이니, 절망이니에 빠진다는 것을 모른다는데 있다. 

 

이상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그 사람의 정신(내 자신)이 현명하여 "바램(희망, 소원등 넓은 뜻)"이라는 단어를 알고,

그 것을 내 자유로 쓸 수 있다고만 알면,

그 단어를 연결할 상상(꿈)을 만들어서 잇기(連望, 結望)도, 끊기(절망, 포기)도, 초월하기도

너무나 쉽다.

 

2. 그 사람의 정신이 우매하여 위의 진실을 모르고 희망과 절망이 두뇌 밖 조건에 따라서

생기고 사라진다고 알거나, 내 스스로 짓고 허물고를 할 수 없다고 알고 있으면 효용있는

희망을 만들지도, 해로운 욕망을 끊지도 못 하게 된다. (3不可望에 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