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로 소중한 사람은 누구일까?
위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누구나 두뇌 속(기억이나 상상)을 더듬고(?) 나서,
두뇌 밖에 있는 누구라고 알고 답 하리라.
그 대답으로 지칭되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건지.....
두뇌 속을 더듬어서 알았으니 두뇌 속에 있다는건지, 아니라는건지...
"(두뇌 바깥) 어디에 살고 있는 아무개"라고 답했으니 두뇌 밖에 있다는건지,
그렇지 않다는건지.....
예컨대, 내가 지금 혼자 방 안에서 "최고로 소중한 사람은 미국에 살고 있는
아무개"라고 알고 있다고 하자.
"그 아무개"를 지금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알고 그렇게 말 하는가?
그렇게 아는 것 모두가 이 몸의 두뇌 속 의식계에서 찾고 확인하여 아는 것
이상도, 이하도, 이외도 전혀 아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이라는 말 조차도 두뇌 속에 떠 올라서 알았을 뿐 달리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실제로는 죽고 없을 수도, 딴 나라로 이민 갔을 수도, 국내에 와 있을수도 있지만,
그런 정보들이 이 두뇌 속에 입력되어 있지 않으면 내 어찌 추호라도 알수 있으리오.
그렇다면 "최고로 소중한 (사람)" 이라는 말에 해당되는 사실은 어디에 있는가?
그 말 자체는 이 두뇌 속에 있다. (밖으로 표현된 말은 허공에 사라지고 없어도)
"그런 상대적인 평판인 말(意, 心)"을 두뇌 속의 어떤 특정인 정보(識)에 연결하느냐
여하는 누구의 무엇이 결정(決意, 定意)하는가?
[로봇(두뇌 속 의식계) ]과 운전자(내 자신), 둘 중의 하나이다.
1. [내] 자신이 그 일을 주도하면 로봇(의식계)은 보조적 역할만 수행하게 된다.
2. [내] 자신이 그 일을 전혀 하지 않거나, 로봇에게 일임되어 있으면 로봇이 전적으로
하게 된다.
3. [내] 자신이 2 (로봇이 한 일)를 사후에 재검토하여 어떤 조치를 취하게 되면 로봇은
역시 보조적 기능만에 그친다.
이 사람의 두뇌 속에 "가장 소중한 사람(所重意)" 이라는 마음이 연결된 특정인 정보(識)를
합쳐서 "소중한 사람은 아무개"라고 내가 알고 답하는 의식이다.
이 의식을 [내] 스스로 다르게 하거나, 저절로 변하거나 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답하는 것
또한 불변이다.
여기까지 이해하게 되면,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물건이나 일, 현상에 관하여 두뇌 속에
어떤 평판(評퍄判)을 연결해 놓고(연결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자기와 주변 사람들, 나아 가
환경에 이르기 까지 엄청난 영향이 끼치게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이해되리라.
사람 하나만 예시해 보고자 한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군가 하는 물음에의 답이 자기여야 한다.
그 다음은 자기와 함께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과연 쉽게 그렇다고 할까?
그 이유야말로 실로 우매하고 무자비하기 그지 없지만.....
소중(所重) :어느 누구의 무엇(所)에 중대한 쓰임(要, 用)이 있다는 뜻 이다.
그런 "소중의식"이 형성되어 있는 두뇌의 소유자인 그 사람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니....
하기사 그 의식을 담고 있는 두뇌보다, 그 두뇌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사람보다,
"아무개가 가장 소중하다"는 마음(意識) 하나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전도망상이
과연 희귀한 일이기만 할까?
"자기의 인생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의식과,
"사람이 그 두뇌 속에 품고 있는 그 어떤 마음(意識)도 그 사람 앞에선 먼지 하나일 뿐"
이라는 의식을 비교해서 평가, 판단, 선택할 자유와 책임은 누구(그 무엇)에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