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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좋은 것을 좋아(親近)하고, 나쁜 것을 싫어(疏遠)한다, 과연?

나 아닌 내 2023. 5. 16. 22:45

좋은 것을 좋아(친근)하려 하고, 나쁜 것을 싫어(소원)하려 한다.

사람은 누구나 그러 하다.

정확히 맞는 말 이다.

 

그런데 "무엇이, 어째서 좋은 것 이고, 나쁜 것 인가?" 하는 물음에는 누구나의 대답이 각양 각색이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이해집단 소속원끼리도  "갑이 좋은 것"이라 하는 것을 "을은 나쁜 것"

이라 하고, "병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구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예컨대 전투중 대대 작전회의에서 "당장 적의 고지를 공격하여 점령하자"는 주장에 관하여

1중대장은 "좋소", 2중대장은 "좋지 않소(나빠요)", 3중대장은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보지 않소"

하는 식 이다.

 

아들이 학업에는 뒷전이고 게임에만 "좋은 것 이라고 골몰(좋아)"한다,

부모가 그건 "좋지 않는 내지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선택"이라고 한다.

아들이 좋은 것이라 하는  것과 부모가 좋은 것 이라고 하는 것이 서로 반대이다.

 

서로의 좋은 것, 나쁜 것이 다르고 내지는 상반될 때 누구의 주장이 좋은 것 인가? 

그걸 판단할 보편적 일반적 기준 까지는 아니라도 그들끼리 공통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걸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좋은 것 -에 관한 논란- 때문에 좋지 않는(나쁜) 일이

벌어지기 쉽다.

 

이런 문제의 핵심은 바로 "좋은 것" -"나쁜 것"도 꼭 같다- 의 정체를

제대로 모르는 줄도 모르고, 아는 줄 알기 때문이다.

 

"좋은 것이 무슨 뜻 이냐?" 하는 물음에,

"좋은 것이 좋은 것 이지..." , 하는 것은 그런 줄 알기 때문이다.

그 이외의 대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좋은 것"이라고 함은 일반적, 추상적인 뜻과 개별적, 구체적인 뜻이 있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일반적 추상적으로 "좋은 것" 이라고 함은,

그 사람의 두뇌 속 어떤 정보(a識)에, 딴 정보(b識)와 비교해서 여차 여차한 점이

"(상대적으로) 더 낫다, 더 좋다"는 말(好意)이 연결되어 있는 의식 일반을 지칭한다. 

 

다음, 개별적 구체적으로 "좋은 것" 이라고 함은,

위의 "좋은(意) 것(識)" 이라는 일반작인 의식 중에서 그 정보(識)에 해당되는 부분이

시, 공간적으로 특정되어 있는 개별의식에 붙어 있는 이름(名)을 지칭한다.

그 이름이 여럿(복수)일 때는 "좋은 것들"이라고 한다.

 

60억이 넘는 사람중에서 "좋은 것(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헤아릴 수 없는 사물중에서 "좋은 것(물건)"도 그리 많지 않다.

왜냐, 그 개인의 두뇌 속에 "좋은 것(사람, 사물, 일, 현상)"이라고 의식되어 있는 것

말고는 그 어떤 좋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마다의 기호(嗜好) 내지는 가치관 여하에 따라서 

1. 좋은 것, 나쁜 것 이라는 의식이 전혀 없는 경우(유아기).

2. 거의 없는 경우(소위 세속을 초월, 도통, 달관한 경지)

3. 좋은 것 나쁜 것이 많아서 정신이 번거로운 경우(세속인)

4. 좋은 것만 많고, 나쁜 것이 거의 없는 경우(정신이 현명한 사람)

5. 나쁜 것만 많고, 좋은 것이 거의 없는 경우(정신이 우매한 사람)

 

엄중 주의할 것은 여기서 "좋은 것 나쁜 것이 있다/없다(有無), 많다/적다(多少)

함은, 그 개인의 두뇌 속 의식계가 그러하다는 것 일뿐, 그 사람의 두뇌 밖

현실 세계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혹시, 이런 의문을 갖거나,질문을 하실지도 모른다.

"내 눈 앞에(현실로) 있는, 이 좋은 사람(또는 나쁜 사람)을 없다니 말이 안

되쟎느냐!?"고.

 

그런 의문이나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그 사람 자체야 있고 말고, 그 사람 자체를 없다고 한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은 그 있는 그대로의 사람일 뿐 "좋은"이나 "나쁜"이라는 상대적 언어(意)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는 뜻 이라고.

 

그 사람을 "좋은", "좋아". "좋다" 하는 것은 그대의 두뇌 속에 있는 그대의 마음(意)이지,

그 사람 자체의 외양에도, 내면적 속성에도 그런 건 추호도 없다.

만약에 그렇게 -좋다, 나쁘다 - 말할만한- 외양이나 속성이 있고, 그걸 근거로 좋다, 나쁘다는

평가가 발생한다면 동일한 조건에서 그 사람을 알고 있는 모두의 마음이 같아야 정상이다,

과연 그렇던가? 

 

같은 강사의 이야기를 들은 청중의 반응이 왜 다양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반대일까,

그 원인은 각 자의 두뇌속 기호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50대 50으로 정반대인 대선 투표결과가 있다면 그게 왜 이겠는가....

 

지금까지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사람들이 좋은 것, 나쁜 것의 정체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온갖 시행착오와 부작용에

휘말리게 됨을 알리고자 함이다.

 

이제 이 글을 쓰는 목적을 밝힐 차례이다.

사람이 좋아하고 싫어해야 할 것을 보편적, 일반적으로 통일할 필요, 유익이 크다는 

것을 깨달아서 공동보조를 맞추고자 함 이다. 

 

동서 고금, 현세 후세를 막론하고 유효할 [보편적 정의]를 제안하고자 함 이다.

개별적인 "정의"들의 이전투구를 청산하고 [보편적 정의]만 따르면 공동선이 되리라는

확신으로.

 

좁게는 부부끼리, 부모자식끼리, 형제자매끼리 그걸 하지 못 해서 겪는 불협화가 적은가?

사회, 국가적 차원에서는 더욱 심각하고.

국제적으로는 왜 국가가, 유엔이 있는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물론 성공 가능성이 희박할지도 모른다.

허나, 동아의 작은 나라 이 곳에서 깨달음의 불길이 하나 솟아 올라서 전지구로 확산되지

않는다는 근거도 없쟎은가....

 

 

한 개인이 하는 일이 자기의 삶에 불편이나 위험을 예방, 방어, 해결하고,

남 에게 불편, 위험을 끼치지 아니하고(개인적 정의)

서로가 어려울 때 돕고, 그렇지 않을 때는 서로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기로 한다.(상호간의 정의)

 

국가는 위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개인들이 만든 조직이다.(국가적 정의)

따라서 국가들 끼리도 개인적, 상호적, 국가적 정의를 협력하여 실현해야 한다.(국제적 정의)

 

꿈 한번 거칭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