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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아(假我), 무아(無我), 진아(眞我)

나 아닌 내 2023. 7. 6. 14:36

"나(我)가 없다(無)"는 말의 뜻을 밝히려면

첫째, "나(我))"라고 호칭하는 대상이 어딘가에, 어떻게건  있어야 하고,

둘째, 그(위의)  존재하는 "나"가 어디에는 없다(無)고 해야 한다.

 

호칭할 대상으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 "나"는 상대적 언어인 있다(有),

없다(無)를 연결할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있는 것 이라야 있다, 없다할 대상이 되지, 전혀 없으면 있다할 수가 없으니,

그 반대인 없다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나(我)"라는 호칭은 어디에 연결될까?

두뇌 속 특정 의식에 연결되어 있다.

이름(名)이 "나", 자기 자신에 관한 정보(識), 그 이름과 정보에 연결된 상대적 언어(意)

로 구성되어 있는 하나의 의식들이고, 그 전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위와 같은 뜻(두뇌 속 意識)으로서의 "나(我)"는 엄연히 있다.

있기 때문에 그 것을 "가짜(假我)"라고, "진짜(眞我)"라고, 어딘가에는 "없다(無我)"라고

말 할 수가 있는 것 이다.

 

여기서 개인의 두뇌 속 "나(我)"라는 의식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가정해 보기로 한다.

1). "칭자 스스로(自), 칭자 스스로를 [나]라고 자칭(自稱)하는 이름" 이라고 의식해 놓은 경우.

2). "칭자에게 알려지는 대상(被稱者)중에 "나"라는 이름이 부여되어 있는 경우.

 

위 구별을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제시해 보이련다.

잠 깨어 있는 [내]가 스스로 앨범(사진첩)을 보고 있다. ([내]라는 이름은 보는 자 스스로의 자칭이다)

[내] 앞에 수 백장의 "나" 사진이 보이고 있다. ("나"라는 이름은 보이는 대상의 피칭이다)

 

명백하고 확실한 것은,

첫째, 보는 자인 자칭하는 [내]는, 보이는 것인  피칭인 '나'와 전혀 다르다는 것 이다.

둘째, 노는 자 에게 보이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피칭자인 '나'일 뿐, 자칭자인 [내]일 수 없다.

셋째, 대상으르 보고 아는 자칭자인 [내]가,  [내] 스스로를 피칭자로 삼아서 보고 알 길은 전무하다. 

넷째, 고로 [내]가 보고 아는 '나'는 [내] 자신일 수가 없다.

 

'누군가를 그리워(또는 미워)하는 나'가 [내] 앞(의식계 상층부)에 떠 올라 있다. 

이걸 주체인 [내]와 객체인 '나'로 구별하여 아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고 쉬워야 한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는 지극히 어려운 비정상으로 보편화 되어 있으니......

 

[내]가 '나'를 다스리려면 자각과 구별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각하지 못 하면 착각에, 구별하지 못 하면 동일시(혼동됨)에 빠지지 않기가 거의 불가능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