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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고 알기.(無知에의 智)

나 아닌 내 2023. 7. 16. 09:42

앎과 모름은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는 모순적이다.

앎이면 모름이 동시에,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있을 수 없다.

모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앎도 모름도 아닌 것이 있으니 바로 "모른다(無知)고 앎(智)"이다.

앎과 모름의 양면에 걸쳐 있어서 보는(알기) 관점에 따라서는 앎인 것

같기도 하고, 모음인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아는 대상은 그 모두가 의식이라는 하나의 시(時), 공(空)적인 단편

적 의식(意識)이다.

 

시(時) 공(空)으로 분열되지 않은 전체로서 하나인 대우주(大宇宙)를 알 길은

없다.

 

비유하자면, 두뇌 속에서 운동장이라는 시, 공적 한정으로 하나의 의식을

만들기도 하고, 혹은 그걸 더 크게 넓히기도, 혹은 좁히기도 하여 의식하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흐름인 대우주를 그대로 의식할 수는 추호도 없다.

 

의식을 아는데 그치지만, 그 범위 또한 그 순간에 두뇌 속 상층부에 현현해 있는

의식에 국한된다.

대우주-자기 두뇌 속에 의식되어 있는 것-현현하여 떠 올라있는 의식=그 순간의

앎 이다. (누구도 여기서 예외는 추호도 없다)

 

여기까지 이해하게 되면 자신이 아ㅏ는 바가 너무나 협소하다는 것,

그리고 부정확하다는 것,

또 올바르게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너무나 농후하다는

겸손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그 겸손의 산물이 바로 "(제대로)모른다고 앎"이라는 축복의 열매이다.

그걸 통하여 제대로 알려는 일(지혜의 발동)을 할 수가 있고,

그로 인하여 언게 되는 과실을 모르는 것이 없는 듯 삶에 비추어 평가해 보면

얼마나 도움이 될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모른다고 알기"를 만들어서 가지려면 그런 문장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첫째, 부분적인 앎이 있어야 한다.

둘째, 그 것을 부분이라고 알려면 그 보다 시간적, 공간적, 평가적인 폭을 넓혀서

알아야 한다고 설정해야 한다.

셋째, 바로 그 넓힌 폭이 "지금 모르는 것" 이라고 확인하여 알아차리면 된다.

 

위의 첫째(아는 것)와 둘째(모르는 것), 셋째(알아차림) 의 결합이 [모른다고 앎] 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습성은 대체로 어떠한가?

안다고 자랑하고 모르면 부끄럽다고 감춘다.

그래서 몰라도 아는 적, 알면 대단하게 아는 척 하지 않던가...?

몰랐거나 잘못 안 것이 탄로나면 궤변까지 동원하여 변명하고....

 

모른다, 알고 싶다, 알려 주면 고맙겠다, 덕분에 알았으니 고맙다....

이런 등등의 소리를 자연스럽게 평안하게 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까?